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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집의 저주’ 바꿀 사육환경표시제도, 관건은 가격

입력
2017.08.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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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19일 오전 세종시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조심스럽게 계란을 구입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살충제 계란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19일 오전 세종시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조심스럽게 계란을 구입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닭장사육계란 233원, 방사사육계란 498원.’

앞으로는 계란 포장지에 이처럼 어떤 환경에서 기른 닭이 낳은 알인지가 표시될 것으로 보인다. ‘살충제 계란 파동’을 겪은 정부가 ‘사육환경표시제도’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A4용지(0.06㎡) 크기도 안 되는 닭장(케이지)에 밀어 넣고 기르는 공장식 밀집사육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소비자들이 일반 계란보다 비싼 가격에도 이러한 진짜 친환경 농장 계란을 선택할 지는 미지수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밀폐형 닭장 ▦개방형 닭장 ▦평사(닭장이 아닌 축사 안에서 기르는 방식) ▦방사(닭을 농장에 풀어놓고 기르는 방식) 등으로 산란계 사육 환경을 분류해 포장지에 표시하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축산물의 사육 환경을 알 수 있도록 포장지나 계란 껍데기에 표시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이미 영국,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숫자로 ‘1: 방사 사육 2: 평사 사육 3: 닭장 사육’의 형태로 사육환경표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런 표시를 보고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동물복지사육을 지지하거나 건강한 식품을 소비하기 위해 해당 제품을 선택한다.

사육환경표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동물복지 차원에서뿐 아니라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과 집단 폐사 등을 막기 위해서도 공장식 밀집사육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녹색당 등은 지난 2013년 5월 “정부 축산정책이 공장식 축산을 지향해 동물 복지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축산물의 제조방법 표시에 가축의 사육방법을 포함하도록 하는 축산물 위생관리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외국에서도 닭장 감금틀(케이지) 밀집 사육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밀집사육을 해 왔던 미국에서도 점차 이를 금지하는 곳이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2015년부터 밀집사육을 금지해 양계업자들이 새 시설을 짓거나 사육 규모를 줄이고 있다. 메사추세츠주는 국민발의투표로 주내에서 팔리는 계란의 경우 수입 계란까지 평사 사육 계란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사육환경표시제도의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진짜 친환경 농장계란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수십만 마리를 기르는 대규모 공장식 밀집 사육은 계란의 높은 생산성과 저렴한 가격을 담보해 왔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은 “소비자들이 그 동안 값싼 계란을 찾아왔기 때문에 농가들도 할 수 없이 규모화와 밀집화를 추구해 온 것“이라며 “개당 100~200원이나 비싼 동물복지계란 등을 찾을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현재 밀집 사육을 택하지 않은 농가의 계란 생산량은 전체 물량의 1% 안팎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장 유통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사육방식을 바꾸는 농가들에 일정기간 시설투자ㆍ소득보전 성격의 직불금을 지원하며 점진적 전환을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사육환경 개선과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시장 수요에 맞춰 공급을 차차 늘려나가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조언했다. 2004년부터 사육환경표기제도를 실시한 영국은 2003년 31%였던 평사ㆍ방사사육 계란 판매량이 2011년 51%로 증가했다. 김재민 농축식품유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의 인증제도와 농가의 사육방식에 신뢰도가 확보된다면 닭장 밖에서 키운 계란에 대한 소비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비싸도 건강한 계란을 먹겠다는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확산되는 것과 발 맞춰 사육환경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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