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배우 이세영은 소신이 뚜렷했다. 올해 스물다섯이지만 1996년 드라마 ‘형제의 강’으로 데뷔, 연기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연기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본인의 철학도 확고했다. 얼마 전 종영한 KBS2 예능극 ‘최고의 한방’에서 선배인 차태현의 디렉션에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최고의 한방’은 배우 차태현과 KBS 대표 예능 ‘1박2일’ 출신 유호진 PD가 공동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두 감독 중 누구와 더 잘 맞았냐’는 질문에 “내 스타일이 강하다.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재미있게 촬영했다”고 웃었다. 그래도 같은 배우인 차태현과 좀 더 잘 통하지 않았을까.
“차태현 감독은 내가 놓친 부분을 잘 캐치해줬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하면 같은 배우로서 이해가 빨랐다. ‘역시 선배다’ 싶었다. 촬영하면서 감독님의 건강이 걱정됐다. 연출하면서 배우들 연기 지도하고, 재미있는 애드리브도 계속 생각하더라. 촬영 끝나고 새벽 4시에도 배우들과 같이 맥주 한 잔 하러 가서 이런 저런 얘기하며 조언해줬다. ‘아버지는 위대하구나’ 느꼈다.”
반면 유호진 PD는 여선생님처럼 “섬세했다”고 짚었다. 자신이 놓친 감정선을 자세하게 설명해줘 “신뢰와 존경심이 절로 생겼다”고 돌아봤다. 딱 하나 걱정되는 게 있었다. 바로 체력이었다. “유호진 감독은 항상 안쓰러웠다. 촬영하면 할수록 마르는 것 같았다. 다행히 건강하게 잘 버텨줘서 감사하다. (차)태현 감독은 날이 갈수록 새카맣게 탔다. 배우인데 생얼로 현장에 와서 모니터 보고 있었다.”
차태현과 유호진 PD는 분명 일반 드라마 감독들과 달랐을 터. 가장 큰 차이를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배우들에게 “레디 액션!”은 마법과도 같다.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 배우들은 바로 극에 몰입해 열연을 펼친다. 하지만 두 감독은 NG가 나도 중간에 ‘큐’ 사인을 주지 않았다고.
“보통 중간에 대사를 버벅 이면 한 호흡 쉬고 간다. 끊을 포인트부터 연기를 하는 거다. NG가 여러 번 나면 중간에 감독이 ‘이어서 갈게’ ‘카메라 계속 돌고 있어’ 등의 말을 해준다. 배우들은 ‘액션’ ‘큐’ 소리를 들어야 경주마처럼 움직이는데 아무도 안 해줬다. 다들 눈치만 보다가 웃음이 터지곤 했다. 막내 FD가 ‘그냥 연기하세요’라고 하니까 힘이 빠지더라. 여러모로 재미있는 상황이 많았다(웃음).”
‘최고의 한방’은 천재가수 유현재(윤시윤)이 20년을 뛰어넘어 2017년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이세영은 극중 공시생 3년 차 최우승 역을 맡아 열연했다. 과거에서 온 인기가수 유현재(윤시윤)와 죽마고우 아이돌 연습생 이지훈(김민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사랑을 받는데도 지치기 일쑤였다. 더위 때문이었다. “세트장이 있는 안성은 아프리카였다”고 고개를 저었다.
키스신에서는 더욱 신경이 더욱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세영은 여름 촬영 필수 아이템이라며 베이비파우더와 드라이 샴푸를 소개했다. “이 두 가지를 얼굴과 머리에 계속 뿌렸다. 24시간이 아니라 26시간 동안 촬영할 때도 있었다. 내 체취가 확 느껴졌다. (윤)시윤 오빠도 땀이 날 텐데 더위를 잘 안 탄다고 하더라. 왠지 세뇌하는 것 같았다. 오빠도 워낙 청결함에 신경 써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웠다”고 귀띔했다.
촬영장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선배인 이덕화를 비롯해 차태현, 홍경민, 동현배 등이 현장의 분위기를 책임졌다. “시트콤 하면 정말 장난 아니겠구나” 싶었단다. “가장 힘든 게 웃음 참는 거다. 계속 웃음이 나오면 내 뺨을 스스로 때린다. 웃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무더위에 촬영이 힘들었지만 16부작이 짧게 느껴질 만큼 아쉬웠다. 특히 윤시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오빠가 동생들을 잘 이끌어줬다. 촬영 끝날 때까지 컨디션 체크를 해줬다. 문자로 ‘회식 때 끝까지 남아줘서 고맙다’며 세심하게 챙겨줬다.” 실제로 연기하며 설렌 적은 없지만, 윤시윤이 연기한 현재가 더 끌린다고 덧붙였다.
‘최고의 한방’은 KBS가 ‘프로듀사’에 이어 야심 차게 내놓은 예능극이었다. 하지만 3~5%대의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 금토 심야시간대인 오후 11시에 처음 편성된 탓도 컸다. ‘시즌2 제안을 안 해봤냐’고 하자 “다들 너무 지쳐 있어서 다음 작품 하자고 말을 못했다. 나 혼자 너무 신난 거 같아서…”라며 아쉬워했다.
이세영은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20대 말괄량이 여대생이었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기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시청률 낮고 반응 안 좋으면 캐스팅 안되지 않냐. 그러면 삶도 각박해지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프레인TPC 제공
최지윤 기자 plai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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