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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공범자들, 방조자들, 방관자들

입력
2017.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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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년 처참히 무너진 공영방송

투쟁기록 담은 다큐 계기로 재조명

지금도 싸우는 언론인들에 연대를

MBC 해직PD 최승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의 한 장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주연배우’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재철을 낙하산으로 보내 공영방송을 마치지 않았느냐는 최 감독의 질문에 “그건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무덤덤하게 답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MBC 해직PD 최승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의 한 장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주연배우’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재철을 낙하산으로 보내 공영방송을 마치지 않았느냐는 최 감독의 질문에 “그건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무덤덤하게 답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기자란 무엇인가. 한자(記者) 그대로 풀면 기록하는 사람, 더 깊게 업의 본질을 밝혀 정의하자면 ‘질문하는 사람’이겠다. PD 아나운서 등 언론 종사자들로 범주를 넓혀도 이 정의는 유효하다. 숱한 직업들의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이 직종들이 살아남는다면, 아니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기어코, 제대로, 끈질기게, 묻고 따지고 기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오래 억눌리고 비틀렸던 그 정의가 비로소 숨통을 튼 자리였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답변 못지않게 기자들의 질문 수준과 태도에도 큰 관심이 쏠렸다. 한 기자는 마이크 든 손을 바들바들 떨었고, 다른 기자는 “대통령님, 떨리지 않으십니까? 저는 이런 기회가 많지 않아 지금도 떨리고 있는데”라고 털어놓았다. 첫 걸음에 천리를 내달릴 수 없는 법. 치열한 취재경쟁 속에 “열 번 넘게 손을 들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는 불평이 쏟아졌고, 낯뜨겁게도 자칭 ‘주류 언론’에는 질문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어쨌거나 반갑다. 재갈도, 핑계도 사라졌다. 집요함과 실력으로 마땅히 물어야 할 것을 묻고 따지고 기록하는 일, 이제는 언론인들의 몫이다.

바로 이날 한국영화사상 가장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개봉했다. MBC 해직PD이자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앵커인 최승호 감독이 만든 ‘공범자들’이다. 지난 9년 간 상식에 기반한 당연한 질문조차 철저히 짓밟혔던 공영방송의 흑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묻고 싸워 온 언론인들의 처절한 투쟁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래서 자칫 무겁고 어둡기만 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절절한 드라마, 황당한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영화는 권력의 ‘공영방송 장악’ 욕심을 충실히 받들었던 ‘공범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을 묻기 위해 숨가쁘게 추격하는 장면에서 액션스릴러로 돌변하기도 한다.

공범자들을 쫓던 카메라는 마침내 ‘주범’을 향한다. 최 감독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김재철 전 MBC 사장을 낙하산으로 보내 공영방송을 망치지 않았느냐고 돌직구를 날린다. 이어진 MB의 답변. “그건 그 사람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객석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영화가 끝나고 지난 9년 간 해고되고 징계받은 언론인 300여명의 이름이 스크린에 흐를 때까지,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못한다. 때마침 공개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회의록에선 노조원 기자ㆍPD의 업무배제를 작당하는 공범자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

관객들의 감상평에는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얘기가 많다. “방송을 하는 사람인데… 몰랐던 것도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SNS에서 접한 한 방송인의 울먹임이 깊고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공영방송 KBS와 MBC를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뜨린 것이 ‘주범과 공범자들’만일까. 알고도 침묵했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방조자들, 혹은 방관자들은 잘못이 없는 걸까. 무게는 다를지언정 적어도 두 부류는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동시대를 호흡했던 언론인들, 그리고 ‘방송의 공정성’을 설파해 온 언론학자들 말이다.

암 투병 중인 해직기자 이용마는 영화 말미에 이렇게 읊조린다. “싸움은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우린 암흑의 시대에 침묵하지 않았다. 10년의 청춘과 인생이 다 날아갔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기간에 우린 침묵하지 않았다.” 정의를 말하고 절규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이 말에 한마디 보탠다. “그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우리는 지난 9년, 언론이 마땅히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거나 묻지 못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처절하게 겪었다. 그러기에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또 힘든 일인지도 안다. 공영방송의 제자리 찾기는 우리 모두의 싸움이어야 한다. 주범과 공범자들에게는 합당한 벌을, 방조자들은 뼈아픈 반성을, 그리고 방관자들은 연대의 손길을~.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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