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피프로닐’ 원료 들여와 불법 제조
성분ㆍ용법 등 라벨도 없는 통에 넣어 판매
산란계 농가 “효과 좋다” 무작정 구매
‘살충제 계란’ 사태의 발원지인 경기 남양주시 양계농장 등에 ‘피프로닐’를 공급한 동물약품판매업체가 불법으로 살충제를 제조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동물용 약품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이 업체가 제조한 약품 통에는 피프로닐 성분 이름이나 금지규정, 약품 사용방법 등이 명기된 레벨 및 사용 설명서조차 없었다. 산란계 농장주들은 이 제품이 불법으로 제조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업체가 동물용 약품을 제조, 유톻시킨 과정을 들여다 보면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이 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임을 고스란히 드러난다.
17일 경기도와 포천시에 따르면 I동물약품점 대표 S씨는 6월쯤 인천의 한 도매상을 통해 중국에서 피프로닐 원료(가루형태) 50㎏을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당국의 수입허가도 받지 않았다.
S씨는 피프로닐 원료에 증류수 및 다른 약품을 섞어 액체형태의 살충제로 제조한 뒤 흰색 사각 플라스틱 용기에 10ℓ씩 담아 남양주 포천 철원 농장 3곳에 6통에서 10통까지 판매했다. 용기에는 맹독성 피프로닐이 포함돼있다는 정보조차 없었다. ‘피프로닐’은 맹독성 살충제로 국내에서 반려견이나 고양이용 살충제 등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처방은 수의사가 하고 약품의 제조 판매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허가를 받아 제조 판매점을 통해 유통하도록 돼있지만 이런 과정들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인근 남양주 포천 강원 철원 등 산란계 농가 3곳에서 S씨가 제조한 제품이살충효과가 크다는 입소문을 듣고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S씨는 제품에 피포로닐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농장주들 역시 산란계 살충을 위한 것이라는 구입 용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농가들은 “올 여름 유난히 극성을 부리던 닭 진드기를 잡기 위해 효과가 좋다는 피프로닐 살충제를 이 업체에서 구입해 축사에 뿌렸다”고 했다.
도매상과 농가들은 살충제 성분이 자신들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에서 검출된 데 대해 “금지약품인지 몰랐다”며 “해당 판매업체에서 ‘닭 몸에 기생하는 이나 진드기를 잡는데 효과가 좋다’며 농가들에게 구매를 권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업체측이 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약품 구입 농가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살충제 성분도 파악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계사에 살포했고, 허가된 약제라도 살포하기 위해서는 닭과 사료통을 모두 치워야 하지만 이런 과정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와 포천시는 산란계 농가 3곳에 살충제 피프로닐을 무허가로 제조 판매한 S씨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향후 경찰조사에서는 약품업체가 권장했는지 또는 농가들이 먼저 요청했는지 여부와 이들이 사전에 금지 약품임을 알았는지 여부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산란계에 치명적인 살충제가 별다른 제한 없이 버젓이 유통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이 같은 관행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동물약품 불법유통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동물약품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동물 관련 영업장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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