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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부자 되는 법

입력
2017.08.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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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허물어지자 시인의 눈은 강과 산과 하늘을 담는다. 호방한 목소리로 부자 되는 법을 보여주는 부자경이다. 바우솔 제공
담장이 허물어지자 시인의 눈은 강과 산과 하늘을 담는다. 호방한 목소리로 부자 되는 법을 보여주는 부자경이다. 바우솔 제공

공광규 지음ㆍ김슬기 그림

바우솔 발행ㆍ40쪽ㆍ1만1,000원

‘도덕경’이 있듯이 ‘부자경’도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그런 책을 맞닥뜨렸을 때 반사적으로 낯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어째서 ‘부자’라는 단어는 그토록 이물스럽고, 외람되고, 그러면서도 환상적인 걸까. 책의 표지와 목차를 얼른 훑어보고는 제 자리에 꽂았는데, ‘누구나 부자가 될 권리가 있다’라는 첫 번째 장의 제목이 지금껏 또렷하게 남았다. ‘권리’라고!

‘담장을 허물다’는 ‘타고난 시 농사꾼’ 공광규 시인의 동명 시를 그림책 글로 다시 쓰고, 김슬기 그림책 작가가 리놀륨 판화 그림으로 구현한 그림책이다. 그림책 가운데서도 시 그림책 만들기는 몹시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고 판화 작업 또한 상당한 노동량이 투여되는 작업이다. 시인은 그림책다운 장면을 위해 이미 명시로 이름난 시를 깎아내고 다듬었다. 그림 작가는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배경 공간을 답사하고 각 장면을 연출해 리놀륨판에 옮겨 색상에 따라 판을 깎아내고 찍는 이른바 소멸법 방식의 판화 작업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을 바쳤다. 시인과 작가가 그런 어려움을 기꺼이 즐기고 감내한 공력 덕분에 어른들끼리 읽던 명시 한 편이 아이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한 권의 책 예술품이 된 것이다.

담장을 허문다는 일은 어떤 것인가? 그림책에는 시가 보여주었던 ‘담장을 허문’ 결과로서 상상하는 관념적 이미지가 아닌 실재 지리를 담보한 예술적 이미지가 펼쳐진다. 그림 작가가 해석하고 연출한 그림 시에서는 어린이 독자를 위해 원래 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아이가 그려지기도 하고, 작가가 직접 답사하고 취재한 금강이며 무량사 가는 국도며 월산과 청태산과 오서산의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이 그려져 있다.

시인이 아이를 데리고 낡은 한옥 앞에 서있다. 어찌된 연유로 갖게 된 집인지(원 시에는 사연이 언급되어 있다), 담장은 기울어지고 문설주는 틀어졌다. 이 첫 장면은 우리의 남루한 일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집의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담장을 허물지는 않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문을 떼어내었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아니면, 시인다운 호기에서 즉흥적으로 치른 일일까? 어쨌든 ‘눈이 시원해지는’ 근사한 일들이 벌어진다. 좁은 마당 대신 텃밭 수백 평을 정원으로 삼게 되고, 우듬지나 가끔 올려다 보이던 느티나무가 둥치째 다가오고, 거기 깃든 생명들과 가까이 서식하는 동물들을 온몸으로 만나게 된다. 그렇게 시인의 눈과 마음은 점점 더 멀리 넓게 열려 길과 강과 산과 하늘을 담는다. 이 그림책은 호방한 목소리로 부자가 되는 법을 보여주는 진정한 부자경이다.

소득을 재분배하고 성장과 복지를 선순환하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이 모쪼록 우리 사회의 철벽들을 무너뜨릴 수 있길 바란다. ‘부자’를 이물스러워하는 우리도 바라보고 있지만 말고 허무는 일을 저질러보자. 너와 나 서로를 가르는 담장, 끼리끼리 나누고 선 긋는 담장, 자기를 좁히고 가두는 담장을 허물어보자.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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