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지음ㆍ이상해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144쪽ㆍ1만1,800원
베스트셀러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2015년 작 ‘느빌 백작의 범죄’를 덮고 나면 1980~90년대 카페 테이블마다 하나씩 있던 ‘운세 기기’가 생각난다.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오늘은 북서쪽에서 인연을 만날 것이다’ 같은 쪽지가 든 동그란 플라스틱 케이스가 톡하고 튀어 나오던. 서양 고전 속 온갖 설정(자식 살해, 마녀 예언 등)을 써 넣은 기기를 무작위로 돌려 순서대로 배치했는데, 의외로 설득력 있는 플롯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황당한 설정과 인물들의 언변에 ‘어디까지 가나’ 계속 읽게 된다.
2014년 가을 벨기에. 느빌 백작은 아르덴 지역의 플뤼비에성(城) 매각을 앞두고 있다. 해마다 10월 첫째 주 성에서 열어온 가든파티도 가문이 파산해 이번이 마지막이다. ‘접대의 귀재’인 백작은 마지막 파티를 성대하게 열 작정이다. 느빌의 얄궂은 운명은 파티를 며칠 앞두고 한밤중 집을 나간 셋째 딸 세리외즈를 구한 점쟁이 로잘바의 예언에서 시작된다. “백작님은 초대된 손님 하나를 죽이게 될 겁니다.”
느빌은 그날부터 불면에 시달리다 점쟁이의 예언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초대손님 중 살해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 나선다. 이런 느빌을 세리외즈가 유혹한다. 자기를 죽여달라고. 열두 살 이후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지옥”에서 살고 있다면서. 첫째 오레스트, 둘째 엘렉트르(둘 다 그리스 신화 속 아가멤논의 자식들이다) 이후 태어난 자신은, 이피제니란 이름이 아니지만 이미 그 운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신화 속 아가멤논은 여신의 분노를 풀고 전쟁에 나서기 위해 막내 딸을 산 제물로 바친다). 그리고 매달 파티를 치르느라 딸을 굶겨 죽인 느빌의 아버지처럼 귀족의 허영과 의무를 구별할 줄 모르는 느빌의 몽매함을 건드린다.
“아빠가 가든파티 중에 절 죽인다면, 모두가 아빠를 괴물로 보겠지만, 어느 누구도 아빠의 행위를 상스럽다고 여기진 않을 거예요. (…) 자식을 죽이는 것은 비열하지만 무례하지는 않아요. (…) 사람들은 아빠와 아빠의 아내, 그리고 다른 자식들을 인정할 거예요.”
느빌은 파티에 세리외즈를 초대하고, 살인을 계획한다. 젊은 소프라노가 슈베르트 연가를 부르는 정원 독창회가 열릴 때 청중 첫 줄 모퉁이에 있는 딸의 머리에 22구경 롱 라이플을 겨누기로.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딸 아이가 외친다. “이젠 죽고 싶지 않아요. 음악이 절 감동시켰어요.” 세리외즈는 아버지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호수에 던져 버린다.
여기까지가 137쪽 소설 중에 136쪽까지 이야기. 해리 아빠(정보석)와 해리(진지희)가 각각 아가멤논과 이피제니로 변신한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특별편을 보는 듯한 콩트 끝에 특별편보다 더 황당한 반전이 두 개나 기다리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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