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검출 6곳 중 5곳 ‘무항생제 농가’
살포 금지 규정 어기고도 비싸게 판매
친환경 인증 시스템 대수술 시급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른바 ‘친환경’ 상표를 내건 산란계(계란 낳는 닭) 농가들이 실제로는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대거 살포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동안 ‘친환경’ 표시만 믿고 비싼 값을 지불해 온 소비자의 분노와 배신감이 증폭되고 있다. 커다란 구멍이 노출된 정부의 친환경인증시스템도 대대적 수술이 요구되고 있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농가는 6곳으로 늘었다. 이 중 경기 양주시 농가를 제외한 나머지 5곳은 모두 정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무항생제 농가다. 이 농가들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인증 기준에 따라 일반 농가에 허용된 살충제조차 써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는 닭 진드기 박멸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살충제를 사용해 왔다.
정부의 축산농가 인증제도는 크게 ‘친환경축산농가’와 ‘동물복지축산농가’로 구별된다. 친환경축산농가는 다시 ‘무항생제축산농가’와 ‘유기축산농가’로 나뉘는데, 이는 먹이는 사료가 무항생제 사료냐 유기 사료냐에 따른 것이다. 소비자가 느끼는 ‘친환경’ 농가에 가장 가까운 곳은 닭장(케이지) 사육 등이 금지된 동물복지축산농가다. 그러나 동물복지축산농가는 89곳에 불과, 전체 산란계 농가(1,456호)의 6%에 불과하다. 반면 소비자가 느끼는 ‘친환경’ 농가와는 거리가 먼 ‘무항생제축산농가’는 765곳으로 52%도 넘는다.
적발된 5곳의 무항생제축산농가는 살충제 사용금지 규정도 어겼다. 무항생제축산농가는 지난해 10월 관련 고시 개정에 따라 살충제를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농가들은 사료에만 항생제를 넣지 않았을 뿐 다른 곳엔 살충제를 사용했고, 친환경 인증마크까지 붙여 소비자들에게 고가의 웃돈(프리미엄)을 받았다. 2015년 한 연구에 따르면 무항생제계란은 개당 37원이 더 비쌌다.
일부 무항생제축산농가가 사실상 ‘무늬만 친환경’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친환경 이미지와 달리 투약용으로는 항생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014,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사료에만 항생제를 쓰지 않을 뿐 치료용으로는 항생제를 쓰고 있는데도 ‘무항생제’라는 이름 탓에 소비자들의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친환경 인증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항생제를 쓰고 나서 휴약기간을 준수하지 않는 문제도 불거졌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무항생제축산농가는 닭장에서 공장식 사육을 하고 항생제를 쓰고 있음에도 마치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 농가인 것처럼 둔갑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까지 조사 대상 산란계 농가 1,239곳(전체 산란계 농가 중 휴업중인 곳 제외) 중 245곳(20.0%)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이에 따르면 245곳 중 2곳에서 검출되지 않아야 할 피프로닐이 나왔고, 다른 2곳에서는 비펜트린이 허용 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 피프로닐이 검출된 곳은 경기 남양주시 마리농장과 강원 철원군 지현농장 등 2곳이고, 비펜트린이 초과 검출된 곳은 경기 광주시 우리농장, 양주시 신선2농장, 충남 천안시 시온농장, 전남 나주시 정화농장 등 4곳이다. 천안과 나주 농장에서 생산돼 시중에 유통 중인 제품인 ‘신선대란 홈플러스'(난각 표시 11시온)와 '부자특란'(13정화)에서도 비펜트린이 초과 검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전수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달라”고 지시했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17일까지 전국 산란계 농가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치겠다”며 “피프로닐이 국제기준 이하로 검출된 계란도 전량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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