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사용에 주의 안 기울여
구제역ㆍAI 때도 예방 소홀 지적
우유와 달리 계란 사전 검역 전무
“솜방망이 처벌 탓 안일” 분석도
‘살충제 계란’이 16일 강원 철원군, 전남 나주시 등 전국 각지의 산란계 농장 4곳에서 추가로 발견되며 사육 농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파동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의 허술한 관리와 감독에 있지만 눈 앞의 이익에 국민의 건강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살충제를 살포해 온 사육 농가들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나 우유와는 달리 계란엔 ‘사전 검역’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사육 농가의 기회주의를 부추겼다.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경기 남양주시 마리농장(피프로닐), 경기 광주시 우리농장(비펜트린 기준치 초과 검출), 강원 철원군 지현농장(피프로닐), 경기 양주시 신선2농장(비펜트리 초과검출), 충남 천안시 시온농장(비펜트린 초과검출), 전남 나주시 정화농장(비펜트린 초과검출) 등의 살충제 구매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날 “마리농장과 우리농장의 경우 ‘농약을 직접 구입해서 살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6곳의 농장주들은 하나 같이 “살충제에 독성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리농장 관계자는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살충제를) 사용했다”며 “피프로닐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농장 주인이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살충제의 구체적인 성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살충제를 닭에 직접 살포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특히 신선2농장의 계란에선 비펜트린 농약성분이 0.07㎎/㎏나 검출됐다. 이는 기준치(0.01㎎/㎏)의 7배 수준이다. 한 수의학과 교수는 “살충제 사용에 대한 기본적인 주의 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농가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방역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고병원성 AI가 전국으로 확산될 당시 세종의 한 농장이 AI 의심신고를 하기 직전 의도적으로 산란계 10만 마리와 계란 288만개를 내다 판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다. 지난 2월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에서 구제역이 2016년 3월(충남 홍성군) 이후 11개월 만에 재발한 것도 축산 농가의 백신 ‘부실’ 접종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구제역 발병 농가들의 항체 형성률은 5~19%에 그쳤다. 지난 2010년 348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된 구제역 사태 이후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지만 일선 농가에선 비용부담, 생산 차질 등을 이유로 예방 활동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았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농식품부가 농축산민을 규제 대상이 아닌 육성 대상으로 보고 그 동안 이들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계도’ 수준에서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며 “강력한 처벌 전례가 없자 농가들이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한 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재민 농축식품유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항생제를 잔뜩 사용한 돼지나 닭은 도축 단계에서 도축검사관에 의해 ‘부정 축산물’로 분류돼 폐기 처분되고 우유 또한 매일 샘플 채취과정에서 ‘부적격’ 제품이 걸러지지만, 계란은 이 같은 ‘사전 검역’이 전혀 없다”며 “살충제 계란의 폐기 또는 출하 여부가 전적으로 농장주의 양심에 달려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란 유통 과정 전반에 대한 사전 검사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이상 농장주의 기회주의와 도덕적 해이를 근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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