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영웅들 동상 철거에
“조지 워싱턴도 노예 소유
그의 동상도 치워야 하나”
美 언론들 일제히 비난
KKK는 “대통령에 감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를 두고 다시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반(反)극우주의 세력을 같은 선상에 놓고 싸잡아 비난했다. 두 차례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끝내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킨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를 금하는 미국 사회의 ‘철칙’을 어기고 “본색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샬러츠빌 폭력 시위에 대해 “두 편(both sides) 모두에 비난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한쪽에는 나쁜 그룹이, 다른 한쪽에는 매우 폭력적인 집단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알트 라이트(대안 우파)’ 세력이 유혈 충돌을 일으켰다는 지적에 “그렇다면 ‘알트 레프트(대안 좌파)’는 어떤가. 그들도 곤봉을 들고 휘두르며 공격했다”며 반극우 시위대를 폭력적인 극좌 집단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샬러츠빌 시위를 촉발한 남부연합(남북전쟁 중 남부 11개주 정부) 기념물 보존 여부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기자들과 설전 끝에 “신(新)나치주의, 백인 우월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시위대 중에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이들이 로버트 리 동상 제거에 반대하러 나왔다”고 옹호했다. 로버트 리, 토머스 잭슨 등 남부연합 ‘전쟁 영웅’의 동상 철거 움직임을 비난하며 “조지 워싱턴(초대 대통령)도 노예를 소유했는데 그럼 그도 지위를 잃어야 하냐”고 거듭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입장 발표는 사태 이후 세 번째로 사실상 ‘최종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2일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우월주의 집회로 반극우 시위 참가자 1명을 포함한 3명이 사망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편(many sides)의 혐오와 폭력”을 문제로 지목했다가, 공화당 등 반발이 솟구치자 14일 성명을 통해 “인종주의는 악”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하루 만에 또다시 반극우 진영에까지 책임을 묻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CNN방송은 백악관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발언이 보좌진의 조언ㆍ계획을 벗어난 트럼프의 단독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미 언론은 일제히 대통령으로서 전례 없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역대 어떤 대통령도 인종 차별주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극우 집단과 동일시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부 지역의 백인 지지층이 두터운 공화당 내에서도 백인 우월주의에 강경 입장을 취하는 것이 철칙으로 지켜져 왔는데 트럼프가 이를 깬 셈이다. 실제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의 데이비드 듀크 전 대표가 15일 “진실을 말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밝히는 등 극우 진영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반응이 그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모두가 틀린 것은 아니다”, “나만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비난을 교묘히 거부하는 방식이 트럼프의 ‘전매 특허’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모두가 자신에게 반대할 때 공격을 비켜나가기 위한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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