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기 TV 동물 프로그램 제작진에게서 전화가 한 통 왔다. “해외에서 원숭이들이 술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해서 먹고 취해서 돌아다닌다는데 혹시 들어 본 적 있나요?” “글쎄요? 우리 원숭이들은 과일과 채소, 사료나 관람객이 던져주는 과자 종류만 먹어요. 그 이외에는 색다른 걸 먹은 경험이 없어서요. 잘 모르겠네요!”
전화를 끊고 인터넷으로 술 취한 원숭이를 검색해보니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어떤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장난으로 원숭이에게 술을 먹였는데, 그 이후 원숭이가 아저씨만큼 아니 그보다 더 취해 사람들에게 먹이를 보채다가 안 주면 손을 붙들고 약하게 무는 등 술주정을 부린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비슷한 일화가 생각났다. 전남의 한 산장에서 탈출한 일본원숭이가 등산객이 주는 걸 먹으면서 몇 년째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난폭해졌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심각한 지경이면 잡아오려고 마취제까지 준비해 갔는데 데려오진 못했다. 사심 없이 다가갔을 땐 내 등에까지 올라타던 녀석이, 마취총을 들고 나서니까 낌새를 채고는 먼발치에서 주춤주춤하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한참 찾아 헤맸더니 가까운 나무 위에 올라가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새로 생긴 휴양림 근처에 들러붙어 살면서 만만하게 보이는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덤벼들어 각종 사고를 치는 모양이었다. 술에 취한 건 아닌 것 같은 데(산지기가 가끔 술을 먹인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지만) 5년 동안 내리 홀로 살다 보니 지치고 외로워 인간에게 과도한 애정표현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공식적으로는 없다고 했지만 실은 우리 동물원 침팬지에게 술을 먹인 적이 있다. 암컷과 갑자기 사별한 판치가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괴로워하길래 오로지 치료 차원에서 맥주를 준 적이 있다. 코끼리 소화불량이나 원숭이 광폭증에 소주를 주면 진정된다고 하는, 동물원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처방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주 대신 먹여 본 것이다. 판치는 세 캔이나 마신 후 한쪽에 쪼그라져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상태가 차츰 나아지더니 며칠 후엔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과를 한참 베어 먹던 판치가 그것을 손에 뱉었다 입으로 넣었다를 반복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열 번 이상 반복하면 사과가 까맣게 갈변해, 처음 보는 사람들은 똥을 먹는다고 오해할 것 같았다.
녀석이 한쪽에 모아둔 똥 같은 사과 부스러기가 다음날 아침엔 말끔히 사라진다는 원숭이 사육사의 말을 듣자, 일탈이 아닌 술을 노린 의도적 행위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루 종일 주물럭거리고 입에 넣었다 빼 알코올 발효가 일어난 사과를 밤새 먹어 치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 판치 역시 산속의 원숭이처럼 외롭긴 마찬가지였다. 판치의 행동이 술을 얻기 위한 것인지 홀로 갇혀 지내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정형행동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도 나름대로 술로 풀거나 달래고 싶은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리라.
글ㆍ사진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동그람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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