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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시민의 일상 파고들지 못하면 망해요”

입력
2017.08.1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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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최장 사무총장 고계현씨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내달 출범

“시민이 직접 문제 해결하는 시대

식상한 구호만으론 설 자리 잃어”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시민단체 베테랑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최장(6년) 사무총장을 지낸 고계현(52)씨가 이번엔 소비자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내달 14일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출범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시민운동 1세대들이 정치권 등으로 죄다 빠져나간 위기의 시민운동 한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자 하는 노장 시민운동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시민 속으로”를 외치는 그는 1994년 경실련 공채 1기로 시작해 경실련 사무총장을 마칠 때까지 22년 동안 시민운동의 현장 한복판에 있었다. 그는 이 시간을 돌이키며 “재미있었다”고 했다. 경실련에서 그는 시민들을 대신해 정부에 현 제도의 문제점과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전세임대차 보호법 개정, 토지실명제 도입, 정보공개법 제정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이때만 해도 경실련이 치고 나가면 정부가 따라오는 형국이었다”며 “경실련 사무실에는 각자의 문제를 안고 찾아오는 시민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시민단체 위상이 급격히 흔들렸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우선 ‘전문성’에서 압도됐다. 90년대까지는 없던 각종 연구소에서 보고서를 쏟아 내고, 교수들도 학회나 언론을 통해 ‘어젠다’를 만들어 냈습니다.” 더욱이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과 같은 ‘거대 담론’만 재생산하는 시민단체의 구호에 시민들의 관심이 멀어지게 됐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인터넷 활성화로 시민들이 자기 불만을 표출한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더 이상 시민단체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됐다”고도 했다.

“새로 산 자동차가 갑자기 고장 나거나, 보험 약관에 문제가 있거나 하면 바로 온라인에 피해자 모임이 만들어지는 시대입니다. 온라인 모임에서 직접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도 다반사죠. 시민단체들이 식상한 구호만 외치는 사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 버린 겁니다.”

시민운동이 존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일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개개인이 겪는 사건과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면서 시민단체 존재 이유를 시민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출범을 앞둔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목표이기도 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출범 전에 이미 ‘혼밥족’을 위한 편의점 도시락 영양 실태 조사 등 실생활 이슈를 파고들고 있다. ‘살충제 달걀’도 외신 보도 후 국내산 달걀 살충제 사용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민이 모두 소비자인 시대입니다. 의식주 외에도 문화, 금융, 정치 가리지 않고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죠. 앞으로 소비자들이 겪는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새 출발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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