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무항생제 인증조건 강화 불구
농가에선 “진드기 박멸 효과”
성분확인 없이 살충제 사용
정부는 사태 심각성 인지하고도
사후 관리에 ‘거북이 걸음’
이달 들어서야 전수검사 뒷북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이미 예견됐고 정부가 좀 더 기민하게 대응했더라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인재(人災)다. 고온 현상으로 닭의 몸에 진드기 번식이 늘어나고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으로 닭의 면역력이 떨어지며 농가들이 더 강력한 살충제를 찾고 있는 데도 당국은 사실상 이를 수수방관했다. 살충제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요구도 대부분 묵살됐다. 금지 살충제인 ‘피프로닐’이 무항생제 산란계 농가 일제 검사 중 검출된 것은 ‘뒷북 검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인증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지난해 10월 ‘친환경농축산물 등의 인증에 관한 세부실시 요령’ 고시 개정을 통해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 조건에 ‘유기합성농약이 함유된 동물용의약외품 등의 자재는 축사 및 축사 주변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종전에는 단순히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후 농가에서 성분에 대한 확인 없이 동물용의약외품을 살충제로 사용한다는 제보가 다수 접수되자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가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가축용 살충제 등 동물의약품을 구매해 사용하면서 금지된 성분이 들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항생제 축산농가에 한해 살충제 사용을 원천 금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항생제 산란계 농가에선 이런 규정과는 상관없이 살충제를 사용해 왔다. 당국이 고시의 문구만 바꿨을 뿐 제대로 된 전수 검사를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달 일제 검사 과정에서 유럽 계란 파동을 일으킨 피프로닐이 검출된 경기 남양주시의 마리농장(8만마리) 관계자는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사용했다”며 “피프로닐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미 다른 농가에서 같은 살충제를 폭 넓게 사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존에도 진드기나 이를 잡는 살충제는 있었지만 점점 내성이 생겨 듣지 않게 된 것”이라며 “기온이 높아져 여름철 진드기 번식이 왕성해지면서 금지된 살충제를 쓰는 농가들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에도 실태 파악과 사후 관리에는 ‘거북이 걸음’이었다. 농식품부가 계란의 안전을 위해 생산 단계에서 살충제 잔류 물질을 검사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2015년 해외 살충제 사용 동향과 국내 일부 제보를 접한 뒤 자체 탐문 조사를 벌였지만 첫 검사가 이뤄진 건 지난해 9월이다. 정기적ㆍ체계적 검사 시스템을 갖춘 건 올해부터이고, 8월이 돼서야 무항생제 산란계 농장 780곳에 대한 전수 검사를 실시했다.
민간에선 일찌감치 살충제 계란의 위험성을 예고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 4월 ‘유통계란 농약관리방안 토론회’를 열고 ▦진드기 감염 실태 조사 ▦사용 살충제 실태 조사 및 적합성 검사 ▦진드기 예방시스템 구축 ▦불법 사용 시 엄정 조치 등의 건의 사항을 정리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달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올 상반기 조류 인플라엔자(AI) 파동이 터졌을 때 진드기 등 다른 가금류 질병과 농장 위생 관리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했는데도 정부가 너무 소홀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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