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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기가 절실한 김정은과 트럼프

입력
2017.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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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4일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TV가 1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4일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TV가 1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불안하고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국 본토를 직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을 급속히 끌어올리고, 이를 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갑다. 외신들은 쿠바 미사일 위기와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상황을 복기하기 시작했고, 괌 앞바다를 향해 북한의 미사일들이 발사되는 날 그토록 우려했던 한반도 전쟁이 발발한다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괌 인근으로 미사일을 쏘겠다는 김정은 정권의 발표를 선전포고로 읽어내는 보도를 지켜보면 전쟁은 정말로 문 앞에 다가온 듯하다. 권위 있는 보도로 명성을 유지해온 언론들마저 전쟁 시나리오 기사들을 쏟아내 오금을 저리게 한다. 2019년 북한의 7차 핵실험으로 전쟁이 촉발돼 수십만이 죽을 것(이코노미스트)이라거나, 시민 수백만 명이 십자포화에 갇힐 수 있다(CNN)는 보도를 지켜보면 우리의 심각한 현실이 해외토픽으로 소비된다는 기분마저 든다. 금융시장이 흔들리지 않고, 괌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줄지 않는다지만 페이스북 등에서는 ‘피난가방 꾸리는 법’이 네티즌의 입길에 오른다. ‘우리는 얼마나 전쟁에 근접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 지점이다.

8월 한반도 위기의 심각성을 읽어내는 첫 단계는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이 마주한 내치 불안에 대한 이해다. 2월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듯 김정은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은 정권을 위협하는 정통성의 상실이다. 한반도 위기 증폭 과정에서 여러 차례 중국과 불협화음을 보인 김정은을 축출하고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위시한 친중정부를 도모하려는 세력에 대한 김정은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미국에서는 북한 엘리트 계층에 의한 김정은 숙청을 통해 전쟁을 피하면서 정권을 교체하는 해결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김정은은 ‘거대한 외부의 적’과 맞서는 위기를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정적에 조금이라도 빈틈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주적 핵 능력을 앞세워 미국과 맞대응 하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에서 한 발 물러난 듯한 발언을 했음에도 종국에는 트럼프의 ‘레드라인’을 건드는 도발을 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적지 않은 이유이다.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한 잇따른 정치적 파문에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도 다르지 않은 처지다. 인종과 계층간 갈등이 극도로 심화하는 가운데 ‘하나의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을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라는 말폭탄으로 몰아붙여야만 자신의 존재가치가 돋보인다. 14일 취임 후 최악의 국정 수행 지지율(34%) 성적표를 받아 든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전쟁이 벌어지는 수준에 근접한 위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비록 국무ㆍ국방장관 등 각료와 참모들이 외교적인 대북 방책을 최우선으로 내세운다고 입을 모았지만 이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군사적 대응을 꾸준히 암시하는 이유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드온 라흐만은 ‘미국은 현재 위험한 국가’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의 갈등을 덮기 위해서라도 외부와 전쟁을 할 수 있으며, 상대는 북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장의 근거로 백악관 내부에서 ‘북핵 위기를 이용해 비판자들을 제압하자’는 발언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인을 사실상 인질로 붙잡고 위험한 도박을 이어가는 김정은과 내치불안에 힘겨운 트럼프 대통령의 공통점은 이렇듯 적정한 수준의 위기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위기 관리’가 흔들릴 경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선언은 전쟁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의지의 천명으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선언이 선언에 머물 때 위기는 불확실성을 먹고 자란다. 더욱 억척스럽게 우리 정부가 북미 간에서 목소리를 내고 개입해야 하는 이유이다.

양홍주 국제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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