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투병 중인 지정윤씨
“환자분들 좌절 않고 이겨내시길”
성악가·피아니스트 등 동료들과
유성선병원서 특별한 콘서트
“저 역시 암 투병 중인 환자입니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분,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치유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암으로 투병 중인 소프라노의 제안으로 마련된 암 환자를 위한 음악회 ‘한여름밤의 꿈’이 대전 유성선병원에서 14일 열렸다.
음악회는 이 병원에서 암 치료 중인 소프라노 겸 뮤지컬 배우 지정윤(36ㆍ사진)씨의 제안을 병원 측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마련됐다.
그는 지난해 말 유방암 진단을 받아 올 초 수술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한 뒤 열심히 공연을 하고, 어린이 뮤지컬합창단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음악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던 그는 순식간에 환자복 신세가 됐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프라노라는 것을 알게 된 같은 병실 환자들이 아픔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노래를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몸이 성치 않아 쉽지 않았다.
마침 이탈리아 유학 시절 인연을 맺은 친구 강수정(소프라노)씨가 병문안을 온다고 했다. 다른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에 처음엔 강씨에게 ‘나는 당장 노래를 부를 상황이 못 되니 대신 환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상의 과정에서 그와 강씨는 피아노가 있으면 제대로 된 음악회를 열자는 얘기까지 나눴다. 강씨는 자신의 동료들도 섭외해 함께 오겠다고도 했다. 지씨는 이를 병원 측에 제안했고, 흔쾌히 공연장소와 시설 제공을 약속 받았다.
음악회에선 강씨를 비롯해, 테너 장보광, 피아니스트 한누리씨가 가곡과 샹송, 팝 등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로 투병 중인 환자들을 위로했다.
강씨와 장씨는 ‘O sole mio’ 등 솔로곡에 이어 듀엣으로 ‘The prayer’, ‘Brindist(축배의 노래)’ 등을 들려줬다. 한씨는 ‘La vien en rose’와 ‘Libero tango’ 등 아름다운 피아노 독주로 암 환자들의 마음을 달랬다.
지씨도 이날 오전 항암 치료를 받아 힘든 몸을 이끌고 ‘거위의 꿈’을 열창하며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그는 “큰 병을 앓고 보니 세상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모든 등장인물들이 어려움을 극복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처럼 환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암을 이겨내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남편 조영호(41)씨는 “아내가 음악회 얘기를 꺼냈을 때 조금 걱정됐지만, 너무 좋은 취지였고, 아내의 친구들이 함께 한다고 해 승낙했다”고 말했다.
음악회를 본 암센터 한 환자는 “본인도 힘들고 어려울 텐데 이렇게 음악회를 열어줘 너무 고맙다. 병원 밖 공연장에서 하는 어떤 음악회보다도 좋았다”고 말했다.
이규은 선병원 경영총괄원장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 등의 행사를 꾸준히 열고 있지만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음악회라 더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대전=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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