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외진 초등학교 앞 골목길 모퉁이에 작은 분식집을 차려 떡볶이를 끓이는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문과 창을 모두 활짝 연 노란 분식집 곳곳엔 알록달록한 신발주머니가 내던져져 있었고, 빨간 떡을 호호 불어 넘기는 아이들 웃음 소리가 까르르 넘쳤다. 30대 젊은 목회자가 번듯한 교회 대신 분식집에서 틈틈이 성경을 읽게 된 것은, 미처 교회에 찾아올 여력조차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다.
헌금을 받기는커녕, 재잘재잘 수다를 들어주고, 매주 1회 성경교실을 열고, 경청한 아이들에게 분식을 먹을 수 있는 스티커를 나눠줬다. 그곳은 야근 중인 아버지를 홀로 기다려야 하는 아이, 학원비가 없어 하교 후 동네를 전전하는 아이, 부모의 불화로 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아이 등 동네에서 가장 작고 여린 자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친구가 중고생이 되면, 동네 주민들에게 떡볶이를 팔아 남은 작은 수익을 털어 학원비를 대기도 했다. 또래 목사들은 대부분 중ㆍ대형교회에 자리잡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그의 미소가 싱그러웠다.
공교롭게 며칠 뒤엔 한 중견 목회자로부터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분식집의 목사님처럼 대형교회를 버리고 빈 들판에서 사역을 시작한 ‘선한 목자’들 대부분이 정작 자신은 생계 곤란에 시달린다는 것. 일부 대형교회에만 몰리는 신자와 헌금 탓에 현금이 넘치는 일부 메가처치에는 재정비리가 끊이질 않고, “광야로 나서라”는 성경 말씀을 따른 목회자들은 가난 속에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런 가난한 목사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유지, 가족부양을 위한 ‘부업’을 허락할지 여부가 각 교단들의 최대 이슈라는 얘기였다.
이 중견 목회자의 결론은 다소 엉뚱한 듯하면서도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그래서 얼른 종교인 과세가 시행돼야 하는 거에요. 일부 대형교회의 천문학적 헌금은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독려할 수 있고, 동시에 가난한 목사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인건비 형식으로 받는 사례비는 대부분 과세점 미만이에요. 그런데 소득신고를 안 하니 증빙이 안돼서 제도금융권엔 접근이 힘들어요. 이 분들 은행에서 대출은커녕 때론 카드 만들기도 쉽지 않고, 근로장려세제나 4대 보험은 꿈도 못 꿔요. 이런 건 모르셨죠?”
그의 바람대로 마침내 ‘종교인 과세’가 2018년 1월 시행을 앞둔 시점, ‘종교인 과세 2년 유예’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50년을 끌어온 논의가 다시 헛돌기 시작했다. 특히 그 대표발의자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라 논란은 더 컸다. 이 입씨름이 반복될 때마다 드는 가장 큰 의문은 국회가 그리도 두려워하는 ‘종교계 표심’의 실체와 내용이다.
‘어떻게 성직자가 세금을 내냐’는 주장은 종교계 전체 지형에서 일각의 주장이 된지 오래다. 가톨릭은 1983년 납세논의를 시작해, 1994년부터 성직자 월급에서 소득세를 원천 징수해왔다. 신자들의 기부액은 모두 국세청에 통보되고, 2011년부터는 미사 예물 등 사제의 모든 소득을 납세 기준에 포함했다. 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역시 2015년부터 과세에 찬성하고 시행 계획을 준비해왔다. 같은 해 개신교 대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도 자진납세를 결의했다. 일찌감치 세금을 내왔거나 찬성의사를 밝힌 종교인들은, 이쯤 되니 당장이라도 시행하면 그만인 ‘종교인 납세’가 또 다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눈치다.
이런 흐름에서 유독 역류를 탄 이들은 국내 개신교 헌금을 독식에 가깝게 끌어 모으는 메가처치, 즉 초대형 교회의 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보수 개신교 단체다. 이들을 한줌이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지형상으론 다수라 하기도 어렵다. 출석 교인 2,000명 이상인 대형 교회는 전체 개신교회의 1.7% 수준으로 추산된다. 국회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이들 보수 개신교 목회자의 말 한 마디에 전 교인을 필두로 국민들이 낙선운동이라도 벌일까 하는 것이겠으나, 제 아무리 유명한 종교지도자의 발언이라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근래 신앙인이나 국민들의 인식수준을 감안하면, 영향력이 무시무시한 그 ‘낙선운동 시나리오’ 같은 것은 게으른 착각일 공산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종교인소득에 전면 비과세를 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그 바람에 연기된 정의는 공평과세 원칙뿐이 아니다. 적잖은 교회와 사찰 재정은 “귀한 곳에 쓰였다”는 미사여구 속에 봉인돼 있고,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는 재정비리 사건으로 내홍도 끊이지 않는다.
이 모두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가 마침내 첫 발을 떼려는 찰나에 투명사회라는 대의보다도, ‘광야로 돌아가라’는 성경 말씀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손익 계산에만 분주한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신앙인을 비롯한 국민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김혜영 기획취재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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