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실패 교훈삼은 ‘집권100일 플랜’
민생에 초점 둔 개혁으로 지지율 고공행진
북핵ㆍ부동산 등 난제에 진짜 실력 보여야
“대통령 못해 먹겠다.” 한때 세간의 유행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념이 나온 건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서였다. 광주 5ㆍ18행사가 대학생들의 물리적 저지로 차질이 생기자 불만을 토로한 것이지만 그간의 순탄치 않은 국정이 이 한마디에 응축돼 있었다.
개혁 작업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거셌고, 대북 송금 특검과 이라크 파병 결정 등으로 지지층 이탈 조짐도 두드러졌다. 화물차 운송거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 사회적 갈등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취임 직후 80%가 넘었던 지지율은 100일 만에 40%로 반토막 났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정권의 성패는 1년, 길어야 2년 내에 결정된다. 이 기간의 추진 동력은 취임 100일 내의 행보에서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이때 이미 적지 않게 상실됐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훗날 “너무나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털어놨다.
눈앞에 다가온 문재인 대통령의 100일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 옆에서 좌절을 함께 맛본 문 대통령은 그때의 교훈을 뇌리에 깊게 새겨두었을 것이다. 대선 전부터 캠프 내에 별도 팀을 만들어 당선 후 로드맵을 전담시킨 데 그런 쓰라린 경험이 토대가 됐다. ‘집권100일 플랜’으로 알려진 로드맵에는 취임 다음날부터 100일까지 일별, 주별로 시행할 개혁 과제와 그에 맞춘 홍보계획까지 담겨 있다고 한다.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취임 일성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운 것이나 5ㆍ18기념식장에서의 희생자 가족 포옹, 가습기 살균제 가족 면담 등은 모두 이 집권100일 플랜에서 나온 것이다. 국정교과서 폐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세월호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 등의 발 빠른 개혁 조치도 입법보다 대통령 업무지시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실행하자는 로드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재인과 노무현 100일의 차별점이 뚜렷한 대목은 ‘민생’이다. 노무현 초기 국정이 권력기관 개혁 등 시스템 개혁에 초점을 둔 반면, 문재인은 철저히 ‘민생 챙기기’에 맞춰져 있다.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진보정부 실패로 귀결됐다는 판단에서였다.
성장 전략이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 ‘소득주도성장론’과 일자리, 최저임금, 비정규직, 부자증세, 건강보험 등 민생과 경제, 복지 담론을 거침없이 주도한 것은 놀라운 ‘진화’다. 노무현 정부였으면 벌써 발목을 잡혔을 ‘코드인사’와 미흡한 인사 검증에도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 것은 민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취임 100일의 연착륙이 정권 성공의 보증수표일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이 맞닥뜨린 과제를 보면 이제 본격적 국정운영 능력의 시험대에 섰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곤혹스런 난제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다. ‘베를린 구상’을 통해 북핵 문제 운전대를 쥐려던 문 대통령의 밑그림이 헝클어졌다.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고 미중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무기력과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면 한반도 평화구상은 초기부터 동력을 잃게 된다. 막후에서 남북접촉을 하고 미국과 타협안을 마련하는 등 제한된 역할이나마 하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탈원전 문제도 간단치 않다. 학계와 시민사회, 지역의 의견이 분분해 갈등 조정이 쉽지 않다. 참여정부 시절 방폐장과 천성산 터널 공사 논란으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잠복 상태인 부동산 가격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집값 안정 실패는 지지층 이반으로 이어지고, 고강도 부동산대책은 토건ㆍ투기세력의 저항에 부딪칠 공산이 크다. 북핵과 부동산, 사회적 갈등은 재임 내내 노 전 대통령을 괴롭혔던 이슈들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노무현의 정치를 넘어서고, 노무현의 경제를 넘어서고, 노무현의 평화를 넘어서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노무현을 넘어서는 문재인의 진짜 실력을 증명해야 할 때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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