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2%에서 20%까지 하향
원전 2기 용량 설비 불필요
“2030년까지 신재생ㆍLNG만으로 충분”
최대 전력수요에 맞춰 예비로 남겨두는 발전설비의 비중인 적정 설비예비율이 현재 22%에서 최대 2%포인트 줄어든 20~22% 수준으로 조정된다. 원전 2기만큼의 설비가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최근 발표된 전력수요 예측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자력ㆍ석탄화력발전소를 더 짓지 않고 신재생 에너지ㆍ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만 늘려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가능해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예측을 토대로 한 전력수요 전망과 설비계획이 지나치게 낮게 잡혀있다는 비판도 있어 전력수급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브리핑을 열고 8차 수급계획에 담길 설비계획 초안을 공개했다. 심의위는 중장기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15년 단위의 계획을 2년마다 수립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적정예비율 전망치는 2년 전 7차 수급계획에서 발표됐던 22%에서 20~22%로 같거나 낮아졌다.
적정예비율은 미래의 최대 전력수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전력설비 예비율을 뜻한다. 최대 전력수요가 100GW(기가와트)이고 적정예비율이 20%라면 120GW의 적정 전력설비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전력수요전망 워킹그룹이 지난달 발표한 8차 수급계획 관련 전력수요 전망치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최대 전력수요치는 101.9GW(2015년 7차 계획에서는 113.2GW)로 적정예비율이 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약 1GW 규모의 발전소 1기를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심의위에 따르면 1GW 규모의 원전 1기 건설에는 4조5,000억원, 석탄화력발전소 1기는 2조원, LNG발전소 1기는 1조4,000억원이 드는데 적정예비율이 하락하면 그만큼의 투자금을 절약할 수 있다.
적정예비율을 계산할 때 발전소 정비나 고장 등으로 인한 가동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설비 규모는 빼고, 수요 예측 변동, 발전소 건설 지연 등에 대응해야 할 추가 설비 규모는 더한다. 8차 수급계획에서 적정예비율이 낮아진 것은 최대 전력수요 예측치가 낮아져서가 아니라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원 구성에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발전소의 정비나 고장 등을 감안해 책정되는 최소 예비율은 발전소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LNG발전소는 예방정비와 고장 정지 등으로 1년의 약 12%인 44일간 가동이 정지되지만 원전은 1년의 약 20%인 76일간 가동이 정지된다. 원전은 다른 발전원에 비해 규모도 크기 때문에 가동이 중단되면 그만큼 큰 규모의 예비 설비가 필요하다. 원전이 가동 정지될 상황에 대비해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예비율도 LNG보다 높기 때문에 원전 비중이 작아지면 예비로 건설해야 하는 발전소도 감소하고 그만큼 필요 예비율도 낮아진다. 위원회는 “신고리 5ㆍ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여부,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의 백업설비 필요성 등에 따라 적정 예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정부 목표대로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20%까지 확대하면 올해 17.2GW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규모가 2030년 62.6GW(태양광ㆍ풍력은 7.0GW→48.6GW)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13년 이내에 45.4GW 규모의 신재생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출력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48.6GW 중 실제 계획에는 5GW 정도만 반영했다고 심의위는 설명했다. 과거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했을 때 발전 실적을 분석한 결과 태양광은 전체 설비용량의 15%, 풍력은 2%가 가동됐는데, 이번 계획에도 그만큼만 반영했다.
심의위는 현재 전체 발전설비에서 폐지가 확정된 원전ㆍ화전 설비를 제하고 추가 건설이 확정된 발전소와 늘어날 신재생 발전소를 더했을 때 2025년까지는 설비를 늘리지 않아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지만 2026년에는 0.4~0.5GW의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고 2030년에는 5~10GW의 설비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대 10GW로 잡은 것은 신고리 5ㆍ6호기(2.8GW) 건설 중단 가능성 등을 감안해서다.
심의위는 이 같은 전망을 토대로 “필요한 설비는 남은 기간 LNG와 신재생 발전소를 늘려 채울 수 있다”고 밝혔다. 원전ㆍ화전을 더 짓지 않고 LNG와 신재생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가 7차 수급계획보다 11.3GW나 낮아졌기 때문이다. 전력수요 예측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토대로 한 것인데 7차 수급계획 당시 GDP 증가율은 연평균 3.4%였지만, 이번 8차에서는 2.5%로 낮아졌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예상 GDP 증가율을 3.0%로 높여 잡았고 내년도 3.0%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심의위는 다음달 정부의 중기 재정 전망이 발표되면 최종 수요 전망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력 설비 계획은 최대 전력수요 전망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GDP 증가율을 토대로 한 2030년 전력수요 예측과 설비계획에 대해선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GDP와 에너지 소비 간의 상관관계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만큼 수요 전망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GDP가 증가하는 비율만큼 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하지 않고, 탈(脫)동조화 현상이 서서히 나타난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과거 모델에 머물지 말고 1인가구ㆍ고령화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전기소비 증가율 변화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