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신 취업...대학생들 제치고 글꼴 대회 1등
끝 둥글고 획 중간 빈 모양 클립 연상
서체 이름 '클립체' '부미체'등 후보
"남보다 빨리 경험한 직장 생활이 어떤 공부 꼭 필요한지 알려 줘"
특성화 고교를 갓 졸업한 사회생활 새내기가 쟁쟁한 전문가와 대학생들을 제치고 한글 글꼴공모전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지난달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한글 글꼴 디자인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세종대왕상을 수상한 산돌 커뮤니케이션의 박부미(19)씨. 올해 2월 서울 미래산업과학고를 졸업했으니 기념사업회가 파악하고 있는 2004년 이후 최고상 수상자 중 최연소자다. 최근 졸업 스펙을 쌓으려는 학생들의 출품이 빈번하고, 업무로 바쁜 일반인들의 출품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어서 박씨의 수상은 더욱 의미가 크다. 최근 7년 동안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세종대왕상을 받은 것은 2011년 대회와 이번 대회 두 번뿐이다.
박씨는 흔히 볼 수 있는 ‘클립’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그의 글꼴은 끝 부분이 둥글고 획의 가운데 부분이 비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클립이 자연스럽게 꼬여 있는 모양을 연상케 한다. 특히 입체감이 도드라진다는 평가다. “평면성이 강조된 기존 글씨체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독성은 높이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글자들의 공간 배치에는 애를 먹었다. 알파벳은 일렬로 나란히 쓰면 되지만 한글은 같은 자음이라도 앞에 오는지 받침인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차지하는 공간도 완전히 다르다. 특히 박씨의 글꼴은 획마다 2개의 선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공간 배치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서체의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SNS에 올려 지인들의 의견을 구했더니 ‘클립체’ ‘실매듭체’ ‘실가락체’에다 글씨가 바르게 정돈된 길 같다는 느낌에서 ‘길가온체’ ‘옷걸이체’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딴 ‘부미체’를 포함해 반응이 좋은 것으로 선택할 예정이다.
박씨는 “완전한 한글 글꼴로 자리매김하려면 최소 2,350자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글꼴을 완벽하게 완성시킨 뒤 이름을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루라도 빨리 해 보고 싶은 생각에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한 데 대한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계고교가 아닌 특성화고에 진학한 것도,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한 것도 모두 박씨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빨리 경험함으로써 “어떤 공부가 꼭 필요한지 알게 됐다”고 한다.
내년에도 같은 대회에 재도전할 생각이다. “큰 상을 탔지만 아직 일을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은 작은 성공에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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