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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서 원숭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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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서 원숭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사연

입력
2017.08.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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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말레이시아에서 찾은 공존의 희망

말레이시아 페낭힐 지역 더 해비탯에 사는 검은잎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있다. 눈 주변 피부에 털이 없고 색이 밝아서 안경을 쓴 것처럼 보여 안경잎원숭이라고도 부른다.
말레이시아 페낭힐 지역 더 해비탯에 사는 검은잎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있다. 눈 주변 피부에 털이 없고 색이 밝아서 안경을 쓴 것처럼 보여 안경잎원숭이라고도 부른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야생동물을 본다.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가장 높아 관광객들이 전망을 보기 위해 즐겨 찾는 페낭힐에 갔을 때였다. 경치는 좋았지만 날씨는 숨 막히게 더웠다. 관광지 특유의 주변 풍경들도 답답했다. 다른 곳에서도 보았던 올빼미 박물관, 관광지마다 있는 앵무새, 뱀과 함께 사진 찍는 곳은 가보고 싶은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분주한 곳을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니 원숭이를 그려 놓은 표지판이 보였다. 서식지라는 뜻의 ‘더 해비탯’(The habitat)이라고 쓰여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 보니 글자 그대로 원숭이 서식지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길이 1.6㎞의 자연 트레일 곳곳에 동물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고 30분마다 안내원이 설명을 해준다. 가이드는 대학에서 동물 생태를 연구하는 학생이었다.

운 좋게 입구를 나서자마자 검은잎원숭이(Dusky Langur)를 만났다. 표지판에 그려 놓은 원숭이였다. 어미가 새끼 한 마리를 안고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원숭이의 색이 달랐다. 어미는 검은색과 회색이 섞여 있었고 새끼는 밝은 노란색이었다. 새끼는 생후 6개월이 지나면 털색이 점점 회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검은잎원숭이는 생후 6개월이 지나면 털이 점점 회색으로 바뀐다.
검은잎원숭이는 생후 6개월이 지나면 털이 점점 회색으로 바뀐다.

이 원숭이의 또다른 이름은 안경잎원숭이(Spectacled Langur)다. 눈 주변에 털이 없고 색이 밝아서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랑구르(Langur)는 원래 힌두어로 긴 꼬리라는 뜻으로, 보통 잎원숭이(Leaf Monkey)를 랑구르라고 한다. 이름처럼 나뭇잎이 주식이지만 소화기관의 세균들이 덜 익은 과일의 독성을 분해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어 익지 않은 과일도 먹을 수 있다. 안경잎원숭이 여러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는지 높은 나무 위에서 왔다 갔다 분주히 움직였다.

말레이시아 더 해비탯에 사는 검은왕다람쥐(오른쪽)와 타란툴라가 만든 거미집.
말레이시아 더 해비탯에 사는 검은왕다람쥐(오른쪽)와 타란툴라가 만든 거미집.

가이드에게 다양한 토종 식물에 대한 설명도 듣고 타란툴라 집도 관찰하며 다람쥐와 나비를 만났다. 가이드는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관광지에서 나온 쓰레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더 해비탯의 설립자는 이곳의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3,000만 링깃(약 79억원)을 들여 엄청난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자연친화적 방법으로 재조성했다. 또 매년 입장료의 일부를 말레이시아 자연생태를 연구하는 대학에 기부한다.

트레일을 나서니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자신이 속한 생태계에서 다른 생명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야생동물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 찾아온 고마운 우연이었다.

글ㆍ사진 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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