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경찰 ‘민주화 성지’ 글에
“간부들 앞에서 강인철 공개적 질책”
“언론에 뭐라 답할지 의논까지”
이철성 경찰청장의 지난해 11월 18일 촛불집회 관련 글 삭제 지시 의혹(본보 7일자 10면)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이 청장 외압을 공개적으로 밝힌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전 광주경찰청장)의 발언 수위가 연일 거세지고, 이에 맞물려 경찰청의 강 학교장 비위 수사도 진행되면서 조직을 흔드는 초유의 경찰 수뇌부 간 다툼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양상이다. 진상규명과 사태 해결을 위해 두 사람 간 통화기록을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 청장이 ‘민주화의 성지’ 등이 언급된 광주경찰청의 촛불집회 교통통제 페이스북 공지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정황을 보여주는 경찰 내부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9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경찰 고위관계자 A씨의 음성 녹취파일을 보면 당시 이 청장이 강 학교장에게 해당 글을 삭제하도록 외압을 가했다는 정황이 발견된다. 이 녹음파일은 본보 단독 보도를 통해 의혹이 불거진 뒤 촛불집회 당시 경찰청 고위간부로 있었던 A씨가 또 다른 경찰 관계자와 휴대폰으로 통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A씨는 통화 도중 “이 청장과 ‘(문제의) 글을 내리게 하면 금방 보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언론에) 무엇이라 답변할 것인가’까지 의논했었다”고 털어놓는가 하면, “이후 이 청장이 본청 국관(간부)들 앞에서 강 전 청장을 공개적으로 나무랐다”고도 말했다.
지난해 광주경찰청에서 근무했던 간부급 인사 B씨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강 전 청장이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본 청장(이 청장)이 갑자기 전화를 해 페이스북 글이 어쩌고 하면서 노발대발한다’며 간부들과 대책을 논의했다”고 털어놨다. “이 청장이 (강 전 청장을) 질책한 건 ‘팩트’”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강 전 청장은 이 청장과 통화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 내용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당시 광주경찰청에 있었던 경찰들의 공통된 얘기다. 광주청에서 함께 근무한 간부 C씨도 “두 사람 간 통화 이후 19일 오후 4시16분쯤 간부들이 뒤늦게 강 전 청장에게 해당 내용과 언론 보도를 보고할 정도였다”고 했다.
# 강인철 수사 압박에 폭로전 의심
李측 “스티커 떼지 말라고 지시
촛불집회에 부정적이지 않았다“
姜 “통화내역 기록 보면 알 것”
하지만 이 청장은 당시 삭제 지시는 물론 강 전 청장과의 통화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경찰청 측은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붙인 꽃 스티커를 무리해서 떼지는 말라고 지시할 정도로 청장은 지난해 촛불집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강 학교장은 “이 청장이 ‘촛불 가지고 이 정권이 무너질 것 같으냐’고 말했다”는 등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는 감찰이 진행되는 가운데, 수사 전환을 앞두고 국면 전환용으로 이 청장 외압 사실을 들춘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마당에 국민을 상대로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사실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언론 문의에 답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찰에 이은 수사 등이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는데 청장을 상대로 거짓말을 꾸미면 나만 결국 조직에서 왕따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 학교장은 “수사가 시작됐으니 통화 내역 등 기록을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 학교장은 경찰청을 방문해 박진우 차장을 만났다. 박 차장은 10분간 진행된 면담에서 강 전 청장에게 “최근 수뇌부 간 갈등으로 비쳐지는 현재 상황과 관련해서 국민들과 직원들에게 더 이상 우려를 주지 않도록 자중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전날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이 청장의 촛불집회 관련 글 삭제 지시 의혹 사건을 이날 형사3부에 배당, 수사에 착수했다.
유명식 기자 gija@hankookilbo.com
[알려왔습니다]
경찰청은 “본지의 광주지방경찰청 SNS 논란 보도와 관련하여 경찰청장은 페이스북 글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2016년 12월 강인철 치안감이 경기1차장으로 전보된 것은 정기인사에 따른 정상적 인사이동이었다. 또한 신상털기식 감찰 보도와 관련해서는 강인철 중앙경찰학교장이 자진해서 감찰을 요청하여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이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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