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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코리안 특급’ 출발지… 봉황에 샛별이 뜬다

입력
2017.08.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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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ㆍ선동열 스타덤… 44년간 야구 스타의 산실

지난해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제44회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휘문고 선수들이 연장 13회말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우승을 확정 짓자 더그아웃을 뛰어나오며 환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제44회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휘문고 선수들이 연장 13회말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우승을 확정 짓자 더그아웃을 뛰어나오며 환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록 봉황’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비상(飛上)의 나래를 활짝 편다. 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1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팡파르를 울리고 17일 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봉황대기는 44년(2011~12 중단) 간 불세출의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한 한국 야구의 역사와 닮았다. 매년 전국대회 중 마지막으로 열리는 봉황대기는 모든 고교팀이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대회다. 이에 따라 각종 이변이 속출하는 명승부가 연출되며 ‘전국구 스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다른 대회에서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무명 선수들에겐 선망의 무대였다. 방학을 이용해 재일동포 선수들까지 출전, 한민족의 자긍심을 심어 주는 등 명실공히 봉황대기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전까지 한국 야구를 상징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그러다 2011년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육성한다’는 정부 시책에 따라 주말리그제가 도입되면서 봉황대기는 희생양이 됐다. 전국 대회를 축소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무등기와 대붕기, 화랑대기, 미추홀기 등 지방 대회가 폐지됐다. 하지만 방학 중에 열려 학습권 보장이라는 정부 방침과도 맞아 떨어졌던 봉황대기까지 없애 일선 고교와 학부모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봉황대기 폐지로 학생 선수들의 진학ㆍ취업 문이 좁아졌고, 동문들의 후원 관계,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지원도 열악해지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의 염원으로 3년 만인 2013년 부활의 결실을 맺었다.

봉황대기는 스타의 요람이었다. 1971년 제1회 대회에서는 무명의 김재박(전 LG 감독)이 활약한 대광고가 당대 고교 최고 스타 윤몽룡(작고)이 이끄는 강호 중앙고를 누르고 결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김 전 감독은 “봉황기 첫 대회 결승에서 남우식, 천보성 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버틴 경북고에 0-1로 아깝게 졌다”며 “모든 고교 팀들이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고, 동대문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당시 뜨거웠던 분위기를 회상했다. 원년 ‘초록 봉황’의 주인공은 경북고였다. 당시 경북고 에이스 남우식은 54이닝을 던지면서 2실점만 하는 괴력을 뽐냈다. 1973년엔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받으며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끌었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스타덤에 올랐다. 고(故) 장효조는 이듬해에도 타율 4할1푼2리에 도루 8개로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 됐다. 조범현(전 kt 감독)은 1977년 충암고 우승 당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국가대표팀 감독)의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도 사실상 봉황대기였다. 1980년 10회 대회에서 광주일고의 선동열은 노히트노런을 작성했고, 같은 대회에서 대구상고 이종두(상원고 감독)는 고교야구 사상 첫 사이클링히트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1981년엔 박노준, 김건우(이상 선린상고)와 문병권, 성준(이상 경북고) 등 고교 스타들이 명승부를 펼쳤고, 군산상고 조계현(KIA 수석코치)은 대구고와의 8강전에서 무려 삼진 18개를 잡아 냈다. 1985년 고(故) 박동희는 5경기에서 10안타만 내 주며 평균자책점 ‘0’의 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봉황대기 로고
봉황대기 로고

휘문고 박정혁은 1989년 19회 대회에서 공주고 1학년이던 박찬호(전 한화)를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때린 뒤 다음날 진흥고와의 첫 타석에서도 홈런을 때려 박병호(미네소타) 이전에 고교야구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주인공이 됐다. 박찬호는 공주고 시절 동기생인 손혁(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3학년 때인 1991년 제21회 대회 2회전에서 광주일고에 단 2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훗날 ‘코리안특급’으로 대성할 자질을 보였다. 당시 선발 맞대결 투수는 박재홍(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성민도 신일고 3학년이던 1991년 모교에 봉황대기 첫 우승을 안기며 최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조성민은 홈런왕까지 차지하며 타격에서도 맹활약했다. 1993년 경북고 준우승 당시 이승엽(삼성)은 선발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고, 1992년 배명고 우승 때는 김동주(전 두산)가 최우수투수상과 함께 타격상, 타점상을 휩쓸었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비는 한국인 빅리거들도 봉황대기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2000년 제30회 대회 땐 동갑내기 추신수(텍사스)와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등장했다. 부산고 추신수는 당시 투수로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리며 당대 최고의 고교 에이스로 활약했다. 성남고의 초고교급 타자였던 박병호는 2004년 제34회 대회에서 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역시 고교 시절까지 포수로 활약했던 강정호(피츠버그)는 2005년 제35회 대회에서 마스크를 쓰며 광주일고를 준우승으로 이끌고 감투상을 받았다.

봉황대기 최다 우승팀은 충남의 천안북일고로 총 5차례 정상에 올랐다. 제43회 대회에서는 박상길 감독이 이끄는 경북고가 최충연(삼성)과 박세진(kt)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1981년 이후 34년 만에 봉황을 품에 안았다. 올 시즌 특급 신인으로 아버지 이종범(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뒤를 잇는 이정후(넥센ㆍ휘문고)도 봉황대기를 거쳤다. 지난해 2학년으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안우진(넥센ㆍ휘문고)은 6월 열린 신인드래프트 1차 우선 지명을 통해 넥센 유니폼을 입고 내년 프로 무대에 뛰어드는 막내 봉황 스타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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