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의 최고 히트 상품이자 ‘신인왕 0순위’ 이정후(19ㆍ넥센)는 봉황대기와 인연이 각별하다. 휘문고 3년 재학 기간 동안 1학년인 2014년과 3학년인 2016년 두 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고교 첫 우승의 짜릿함과 졸업 전 유종의 미를 거둔 대회라 그 순간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흐른다.
이정후는 8일 본보와 통화에서 “봉황대기는 정말 추억이 많은 대회”라며 “무엇보다 고등학교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고 떠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지난해 우승 순간을 돌이켜봤다. 이어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성적도 잘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정후의 휘문고는 지난해 결승전에서 군산상고와 연장 13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힘겨운 승부였던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1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이정후는 수비에서 뼈아픈 실책을 두 차례 저질렀다. 팀이 2-1로 앞선 4회 상대 타자 임지훈의 내야 땅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책을 해 동점 빌미를 제공했고, 5회에도 또 다시 실책을 범하며 2-3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8회말 1점을 뽑아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간 휘문고는 ‘끝내기 취소 해프닝’을 딛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13회말 무사 만루에서 김재경이 끝내기 안타를 쳤는데, 휘문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가던 중 더그아웃에 있던 한 선수가 3루 주자와 부딪쳐 수비 방해 판정을 받았다. 아웃카운트만 1개 늘어 1사 만루가 됐지만 결국 고명규의 외야 희생 플라이로 경기를 끝냈다.
당시 이정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실책을 2개나 한 나 때문에 질 뻔한 경기를 동료들 덕분에 이겼다”면서 “우승을 못했더라면 무거운 짐을 안고 졸업할 뻔했는데 동료들이 덜어줬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1학년 때는 봉황대기를 통해 ‘바람의 아들’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보통 1학년은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정후는 주전 자리를 꿰찼다.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이명섭 휘문고 감독은 “실력으로 당당히 주전 선수로 나서는 것”이라며 “재능이나 수비, 송구, 주루 플레이 등 아버지를 뛰어 넘을 자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실제 2014년 대회 때 6경기에 나가 타율 0.304(23타수 7안타) 3타점 5득점 3도루라는 준수한 성적표로 휘문고의 사상 첫 봉황대기 정상 등극에 힘을 보탰다. 이정후는 “1학년 때라 아무 생각 없이 했다”면서 “책임감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를 재미 있게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포항에서 유신고와 맞붙었던 결승에서는 아빠도 경기장을 찾아 첫 우승의 순간을 지켜 봐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정후는 “사람마다 잘 맞는 상대나 팀, 대회가 있듯이 봉황대기는 나와 궁합이 잘 맞았던 대회”라며 “고등학교 첫 우승과 마지막 우승을 경험한 봉황대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작년에 MVP를 받았던 투수 (안)우진이가 건재하니까 후배들이 올해도 잘해줬으면 좋겠다. 2학년 때 전년도에 우승했다는 안일한 마음 탓에 1회전에 탈락했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집중했으면 한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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