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은 비정부기구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에서 2002년 제정한 ‘국제 고양이의 날(International Cat Day)’이다. 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지만 인류는 늘 고양이에 관심이 많다. 유럽권에서는 1992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기념한 2월 17일을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 이름 붙여 행사를 벌이고 있고 러시아에서는 3월 1일을 고양이의 날로 보고 있다.
고양이는 정파나 입장과 상관없이 정치인의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는 존재기도 하다. 한국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로 입성한 ‘찡찡이’가 최근 화제가 됐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등이 꼽은 정치인ㆍ명사의 대표적 반려 고양이들은 다음과 같다.
영국 다우닝가의 고양이 패권
영국 총리공관 다우닝가 10번지는 1924년부터 ‘수석수렵보좌관(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 제도를 운영했다. 낡은 총리공관에 서식하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길렀는데 이 고양이에게 공무원 대접을 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수렵보좌관 상주 비용에도 실제 정부 운영예산이 투입된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2011년 뽑은 얼룩고양이 래리(Larry the cat)는 테리사 메이 현 총리의 입주 후에도 공관을 지키고 있다. 래리는 한때 직무태만 논란에 휩싸여 지위를 박탈당했고 조지 오스본 당시 재무장관이 추천한 후임 보좌관 프레야(Freya)와 쥐 잡기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굴욕도 당했다. 그러나 2014년 프레야의 은퇴를 계기로 복직하면서 3년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래리는 지난해부터 길 건너 외교부청사가 고용한 ‘파머스턴’ 재무부의 ‘글래드스턴’ 내각사무처의 ‘이비’ ‘오시’ 등 다우닝가의 고양이 5총사를 형성, 영국 정부 내 ‘고양이 패권’을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고양이 세력이 너무 강해서인지,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의 반려견인 웰시테리어 ‘렉스’와 닥스훈트 ‘오스카’는 총리공관 옆 11번지 건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고양이를 사랑한 폴란드 실세 권력자
폴란드는 최근 집권당 법과정의당(PiS)이 사법 개혁 입법을 추진, 사실상 사법부 장악을 시도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의 최대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의 국가 수장은 베아타 시드워 총리와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이지만 그 배후에는 PiS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킹메이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대표가 있다. 사법부와 EU를 향해 폭언을 서슴지 않는 이 67세 노정치인은 유달리 고양이를 사랑한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카친스키 대표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데 그가 집에 가면 반겨 주는 것은 고양이 2마리다. 카친스키 대표는 폴란드 타블로이드지 수퍼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늦은 밤까지 고양이 2마리를 데리고 소파에 앉아 조용히 방송을 본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카친스키는 2006~2007년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월급의 20%를 꼬박꼬박 고양이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카친스키의 고양이들은 그의 지지층인 국가주의 성향 시민들로부터 ‘대통령 고양이(kot prezesa)’라는 애칭을 얻았으며 이따금 야권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온라인 투표의 ‘대체 선택지’로 등장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차이잉원의 ‘싱크 탱크’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도 대표적인 애묘 정치인으로 꼽혔다. 홍콩 영자신문 남화조보(南華朝報ㆍSCMP)는 2016년 선거 압승으로 집권한 차이 총통에게 ‘캣 우먼’이란 별칭까지 붙여 가며 그의 고양이 사랑을 소개했다. 암컷 회색 얼룩고양이 샹샹(想想ㆍ‘싱크탱크’로 번역 가능)은 2012년 태풍 ‘사올라’가 강타한 직후 민진당 의원에 의해 발견된 유기묘로 당시 민진당 대표였던 차이가 입양했다. 수컷 진저 얼룩고양이 아차이(阿才)는 2016년 대선 운동 기간에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차이 총통의 젊은 지지자들은 영상에 차이 총통과 종종 함께 등장하는 샹샹과 아차이를 향해 사랑을 쏟아내고 있다. 2015년 10월 차이 당시 대표의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한 보좌관은 대만중앙통신에 “고양이 관련 포스트나 사진, 영상을 올리면 ‘좋아요’ 수가 다른 포스트보다 20%에서 50%까지 뛴다”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고양이는 내 새 가족과도 같다”며 “집에 들어가 이들이 문 앞에서 반겨 주는 모습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고 적었다. 아울러 동물보호정책에 더 많은 투자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샹샹은 이름대로 실제 ‘싱크 탱크’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위키리크스의 간판: 첼시 매닝, 클린턴 이메일, 그리고 고양이
영국의 애묘 분위기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주영 에콰도르대사관에 고립된 생활이 지루했던 것일까. 기밀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운영자 줄리언 어산지도 2016년 5월 반려고양이를 들였다. 한동안 ‘대사관 고양이(Embassy Cat)’라는 별칭이 붙었고 현재도 대개는 그렇게 불리지만,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실제 이름은 제임스라고 한다.
대사관 고양이는 2016년 11월 스웨덴 검찰이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를 조사하려 런던 에콰도르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넥타이를 매고 대사관 창가에 등장, 세계 언론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대사관 고양이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위키리크스는 이 고양이 사진이 실린 20달러짜리 마우스패드와 머그컵, 티셔츠를 상품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판매 중이다. 대사관 고양이에게도 자체 트위터 계정이 있는데 그는 이 계정에서 자신의 관심사는 ‘대갊시(counter-purrveillance)’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어는 위키리크스가 핵심 의제로 내세우는 대감시(counter-surveillance)와 고양이의 가르랑거리는 소리(purr)를 합성한 말장난 단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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