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 “설비 꾸준히 늘어 이달 초 공급 전략 95GW 수준”
전력 공급 너무 많아도 부작용…일부 발전소는 적자 계속 쌓여
계속되는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급증하며 전력수요가 역대 최대치에 근접하면서 전력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일부 기업에 전력 사용을 줄이라는 급전(給電) 지시가 내려지기도 해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확인결과 급전 지시는 정부와 기업간 계약에 따른 통상적인 수준의 절차였고 전력 수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급전 지시는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피크 타임’에 최대전력 관리를 위해 공장, 대형건물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기업이 전기 사용을 줄이면 그 양만큼을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에 따른 것이다. 보조금 지급은 정부가 운영 중인 ‘수요자원거래(DR·Demand Response)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2011년 9·15 대정전 사태로 전력예비율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은 뒤 정부가 2014년 11월 만든 제도로 6월 기준 3,195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 주장의 타당성을 높이려 전력예비율을 맞추기 위해 기업에게 무리하게 전력 사용을 줄이라고 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DR시장은 전기사용자가 전력수요를 자발적으로 감축하고 시장에서 보상을 받는 제도로 참여 기업에 연간 5,300억원을 쏟아 붓고 있는 DR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시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에는 1월, 8월 두 차례 총 5시간 급전 지시가 있었고 올해는 7월에만 두 차례 총 7시간 급전 지시가 있었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탈원전 정책 합리화를 위한 정부의 전력 수요 통제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산업부의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가 전력 수요 통제를 하지 않아도 전력 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8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 예측치는 86.50GW(기가와트)다. 역대 최대 전력수요는 8월 12일 기록한 85.18GW였는데 그보다 1.32GW 늘어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7일까지 올해 최대치는 7월 21일 기록한 84.58GW였다. 최대 전력수요는 2011년 73.14GW에서 2013년 76.52GW, 2015년 78.79GW 등 완만하게 증가하다 지난해 크게 늘었다.
특히 올해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과 때 이른 폭염 등으로 인해 전력수요가 80GW가 넘은 날이 7월 6일을 시작으로 8월 7일까지 한 달여 간 13일이나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단 3일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전력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여름철(7, 8월) 발전 설비예비율은 크게 늘어 14년 만에 30%를 넘어서며 34%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전력수요 증가분보다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할 용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발전기 4기가 폐지되면서 1.24GW의 공급이 줄었지만, 신고리 원전 3호기(1.4GW), 태안 화력 9호기(1.05GW), 삼척 그린 화력 2호기(1.02GW) 등 발전소 15기가 신규 가동되며 발전설비가 13GW 정도 늘었다. 공급 가능 최대전력도 지난해 8월 초 90GW 규모였던 것이 올해는 95GW로 5GW 정도 증가했다. 통상 예비전력이 5GW 이상이면 전력수급이 안정적인 ‘정상’ 수준으로 판단하는데 올해는 전력수요가 가장 많았던 지난달 21일에도 10GW 이상의 예비전력을 유지했다.
전력설비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전력 공급 과잉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8월 이후 준공되는 발전소만 해도 신고리 원전 4호기(1.4GW), 신보령 화력 2호기(1GW) 등 4기 3.5GW에 달한다. 내년부터 2022년까지 향후 5년간 지어질 발전소는 신고리 5, 6호기를 제외해도 원자력 2기 2.8GW, 화력 9기 8.4GW, 액화천연가스(LNG)복합 6기 3.9GW로 총 17기 15GW 규모다. 여기에 2030년까지 전체 발전 비중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정부 발표에 맞춰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매년 1~2GW를 늘린다면 2022년까지 20GW 이상이 늘어나게 된다.
반면 2030년까지 수명이 다해 폐쇄되는 원전은 12기로 9.6GW, 조기 폐기되는 석탄화력은 10기 3.3GW로 총 13GW 정도밖에 안 된다. 앞으로 5년 내 새로 늘어나는 발전용량만으로도 2030년까지 폐쇄되는 발전설비량을 모두 대체하고도 남는다.
전력수요 전망과 비교할 경우 전력공급 과잉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민간 자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전력수요 전망 워킹그룹’이 지난달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 관련 전력수요 전망치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전력수요는 7차 계획 대비 11.3GW(113.2GW→101.9GW) 감소할 전망이다. 이 전망대로라면 2022년 이후 발전소를 새로 짓지 않아도 충분한 수준이다.
전력공급은 수요에 비해 부족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부작용을 낳는다. 지금도 극서ㆍ극한기를 제외하면 가동을 멈추는 발전소가 많아 발전사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LNG 발전소 가동률은 평균 35.9%에 그쳤다. 일부 발전소는 적자가 계속 쌓이면서 설비투자비마저 회수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력 설비가 크게 늘어 예비율이 높아지면서 발전단가 낮은 원자력ㆍ화력 발전소 위주로 전기가 공급돼 LNG발전소 등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면서 “소규모 발전소나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무작정 설비를 늘리는 것보다 에너지 수요와 설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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