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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독서정치

입력
2017.08.0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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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온 5일 저녁 '명견만리(明見萬理)'를 읽은 사실을 공개하고 국민들에게 일독을 권했다. 6일부터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등에서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온 5일 저녁 '명견만리(明見萬理)'를 읽은 사실을 공개하고 국민들에게 일독을 권했다. 6일부터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등에서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연합뉴스

주말인 5일 '명견만리'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첫 휴가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저녁 페이스북에 "책도 읽지 않고 무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휴가 중 읽은 '명견만리'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추천한 덕분이다. KBS 1TV가 2015년 봄부터 경제ㆍ과학ㆍ문화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방영한 동명의 '렉처멘터리' 프로그램을 묶은, 3권이 한 세트인 이 책은 다음날부터 주요 온ㆍ오프라인 서점에서 평소의 10배가 넘는 주문이 폭주해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 당초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그냥 푹 쉬고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굳이 '휴가독서'를 소개한 이유는 뭘까. 그는 "사회 변화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겪어보지 않은 세상이 밀려오고 있는 지금, 명견만리(明見萬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개인도 국가도 만리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10년, 20년, 30년은 내다보며 세상의 변화를 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의 모습을 통찰하며 그 미래를 어떻게 맞을지 함께 고민하고 그에 맞춰 정치도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 이른바 '대통령의 독서정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독서광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을 수도 있지만, 세력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에게 책은 자신의 국정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는 재임 중 국무회의 등 공식석상에서 '드골 리더십과 지도자론' 등 50여권의 책을 추천했으며 몇몇 저자는 청와대 비서관 등 요직에 중용하기도 했다. 취임 첫해 휴가 때 들고갔던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이 실현되는 '사람 사는 세상'의 이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 문재인 정부는 얼마 전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정비전으로 천명하고 임기 중 실천할 국정어젠다를 5대 목표-10대 전략-100대 과제로 정리했다. 이를 위해선 여소야대 국회의 벽을 뚫고 400여개의 법을 제ㆍ개정해야 한다. 내달 개회하는 정기국회에서 야당과 본격적인 입법전쟁을 벌여야하는 문 대통령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러니 "함께 멀리 훤히 내다보면서 우리사회의 절박한 어젠다를 공유하자"고 외치고 싶었을 게다. 취임 3개월이 넘도록 70%대를 웃도는 전무후무한 국정지지율은 이 외침의 뒷배가 됐을 법하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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