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이런저런 글이나 대중매체에서 ‘표기’와 ‘표현’을 혼동하여 사용하는 일을 보게 된다. 문맥에 따라서는 두 가지가 다 쓰일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곳도 분명히 존재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생물학적인 논쟁과 달리, 표기가 표현 다음에 생기는 것임은 부풀려 말하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두 가지는 아예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감정은 표정이나 몸짓, 말 따위로 ‘표현’할 수 있지만 ‘표기’할 수는 없다. 감정을 표기한다면 말로 표현한 다음에 해야 한다. 표현할 말이 없는 감정은 표기를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표기가 말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다.
쉬운 예로, ‘개구리’를 ‘개굴이’로 적으면 표현이 달라진 것인가, 표기가 달라진 것인가? 두 표기의 발음(어형)이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표현은 그대로이며 표기만 달라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구리’로 적는다면 이는 표현이 달라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표현이 달라졌으므로 표기는 당연히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깨구리’를 두고 ‘개구리’에서 표기가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언급이 아니다. 표현(어형)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표기와 표현이 매우 다른 말이기 때문에 올바르게 구분해서 써야 읽는 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동해’를 ‘일본해’로 적은 외국 지도는 표현을 우리와 달리 취한 것이다. 다만, 제품 포장에 원산지를 인쇄한 것을 ‘원산지 표기’로 칭하는 것은 표현과 구분되는 표기의 의미가 아닌, ‘적어서 나타냄’ 정도의 의미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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