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시절, 입시준비를 꽤 열심히 했다. 원하는 대학에 갔지만 돌이켜보면 억울하다.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 그때는 외웠지만 거의 까먹었다. 내 노력이 낭비되었다는 사실에 억울하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흔히 본 학생들- 학원 분위기를 살려주는 ‘자원봉사자’, 그냥 불안해서 다닌다는 ‘의무교육대상자’, 꼬박꼬박 학원비를 일찍 내는 ‘기부자’, 학원에 와야 부모와 안 싸운다는 ‘대피자’. 학원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은 시간과 비싼 학원비를 모두 낭비했다.
강남의 재수학원 원장 시절, 아침 7시에 와 밤 10시에 귀가하는 학생들과 손바닥을 마주칠 때 전해진 것은 오늘도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허탈함이었다. 종종 학교에 가서 보는 상황도 비슷하다. 학교에 왔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표정의 학생들,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 학생들, 학교에 와서 방과 후에 즐길 거리를 준비하는 학생들, 야자시간에 시계만 보는 학생들, 시험지를 받자마자 한 줄로 답을 찍고 자는 학생들, 모두 학교생활을 낭비하고 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은 학습 컨설팅이다. 학생이 무효학습과 유효학습을 잘 구분해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왔다. 입시 컨설팅을 하면서는 적합한 입시경로를 선택해 노력의 낭비를 줄이도록 했으며 진로 컨설팅은 인생의 낭비를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컨설팅을 하지 않는다. 워낙 수요가 많아 돈 벌기는 쉽지만 내가 알게 된, 심각한 교육의 낭비 문제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성적은 늘 상위권이지만 학습 효율성은 하위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문제의식이 생겼다. ‘질’이 낮은 공부를 대부분 ‘양’으로 채우는, 장시간 공부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교육과 공부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교육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과 돈을 너무 많이 낭비하는 개인을 탓하면서 ‘노오력’을 촉구했던 나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고 넓고 깊게 보려고 노력했다.(그 즈음 교육시민단체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학교 살리기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리 학교가 하는 짓이 마땅치 않고 교사가 밉더라도 학생들 일과의 대부분인 학교 수업시간을 계속 낭비하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사교육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지만 반대하는 이유도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점 때문이다. 학교의 수업과 평가방식을 혁신하여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집중하면 그만큼 학원에 가야 할 필요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유리한 경쟁을 위해 마음껏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는 일부 상류층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의 낭비를 막기 위해, 학생들의 진정한 배움과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학교를 직접 봤기 때문에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수업을 혁신해 널부러진 학생 한 명 없이 자기 역할을 하면서 협력하는 수업장면을 직접 봤기 때문에 기대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학교와 수업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일반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학생을 만나면 낭비가 심한 공부, 장시간 저질 공부노동의 피로감을 쉽게 읽을 수 있다. 학부모를 만나면 낭비가 심한 비용,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의 피로감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내가 비록 미약하지만 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로 안내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교육 선진국들은 ‘Study smart’를 향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Study hard’에 갇혀 있다. 시험의 변별력과 입시의 공정성 문제 이상으로 교육과 공부의 질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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