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그저 기술일 뿐, 기술을 사용하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기술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드넓은 스크린 가득 수많은 이름들이 아로새겨졌다. 무려 998명. 할리우드 영화 ‘혹성탈출’ 3부작의 최종편 ‘혹성탈출 : 종의 전쟁’에 참여한 웨타 디지털 소속 기술자들이다.
웨타 디지털의 임창의 라이트닝 기술 감독과 앤더스 랭글랜즈 시각효과 감독은 7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열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유인원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첨단 기술을 공개했다.
‘혹성탈출’의 주인공인 유인원들의 리더 시저는 영국배우 앤디 서키스의 경이로운 모션 캡처 연기와 웨타 디지털의 기술력이 함께 빚어낸 최고의 캐릭터다. MPC(The Moving Picture Company)에서 13년간 근무하며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2010)와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2011) ‘마션’(2015) 등에 참여했던 랭글랜즈 감독은 웨타 디지털에서의 첫 작품에서 시저를 만났다.
랭글랜즈 감독은 “유인원과 사람의 얼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모션 캡처 데이터를 전환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며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유인원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눈썹의 움직임은 제한적인 반면 턱과 입술은 광범위하게 움직이는 유인원의 특성에 배우의 감정 연기를 접목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그는 “유인원의 연기는 100% 배우의 연기였다”며 “그렇지만 배우의 연기를 유인원의 연기로 전환하는 데 고통스러운 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영화에서 실제 오랑우탄으로 오해 받은 장면을 소개하며 “컴퓨터 그래픽 작업자가 관객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2009년 웨타 디지털에 입사한 임 감독은 ‘아바타’(2009)와 ‘어벤져스’(2012), ‘아이언맨3’(2013) 등을 작업했다.
웨타 디지털의 기술자들은 빛의 각도에 따라 변하는 털의 질감과 색깔을 구현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까지 분석했다고 한다. 이 정도 기술이라면 인간도 실사와 다름없이 디지털로 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배우의 연기가 효용성이 있을까. 이에 대해 랭글랜즈 감독은 “기술이 진보한 건 사실이지만 시저 같은 캐릭터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개발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다”며 “디지털 캐릭터가 배우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전편들보다 심화된 시저의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도전하다 보니 기술이 발달한 것”이라고 배우에게 공을 돌렸다. 임 감독도 “디지털 캐릭터와 실제 배우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 영화를 통해 시저를 연기한 서키스가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6년간 이어진 ‘혹성탈출’ 3부작에 모두 참여했던 임 감독은 정든 유인원 캐릭터들을 “애증관계”라고 표현하며 작별의 소회도 털어놨다. 그는 “행복한 순간은 짧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길었다”며 “하지만 고통이 길수록 행복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아울러 “시저를 비롯한 유인원 캐릭터들을 떠나 보내는 게 홀가분하지만 그립기도 하다”며 여전한 애정을 내비쳤다.
두 사람은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을 꼭 극장에서 봐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임 감독은 “관객 입장에서 봐도 클래식하면서도 품위가 있는 영화”라고 자부하며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최고의 영상을 극장에서 봐야만 감성이 충분히 전달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랭글랜즈 감독도 “서키스의 연기가 절정에 달했다”며 “멋진 스토리와 새롭게 추가된 캐릭터를 즐겨달라”고 덧붙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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