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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는 마릴린 먼로의 향기와 ‘샴푸의 요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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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는 마릴린 먼로의 향기와 ‘샴푸의 요정’이 있다

입력
2017.08.0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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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전통시장에서 만난 소녀들. 카메라를 들이대자 일제히 환호를 터트리며 포즈를 취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라오스 전통시장에서 만난 소녀들. 카메라를 들이대자 일제히 환호를 터트리며 포즈를 취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내’가 삶을 만들어가지만 삶이 ‘나’를 잡아먹으려 들 때가 있다. 삶이 나의 존재를 짓뭉갤 만큼 덩치가 켜졌을 때다. 그러면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목적지는 라오스. 여행지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특정한 목적지로 향하는 게 아니라 그저 밤 속으로 떠나는 기분이었다. 잘 나왔다 싶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지쳤을 때보다 여행이 더 필요한 순간은 없다.

라오스 비엔티안에 도착한 건 새벽 2시였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출신답게 더위는 겁나

지 않았다. 게다가 7월은 한창 더운 때도 아니었다. 우기였다.

공항 문을 나섰을 때 제일 먼저 일행을 맞은 것은 더위도 비도 아니었다. 냄새였다. 라오스 특유의 비릿하고 툽툽한 냄새가 감돌았다. 대기가 농밀해지는 밤이라 냄새가 더 진한 듯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냄새에 비까지 겹치는구나 싶었는데 빗방울이 아니었다. 땀이었다. 5분도 채 안 돼 머리카락에 맺힌 땀방울이 목덜미에 비처럼 떨어진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입으로 바람을 빵빵하게 채운 풍선 속이 꼭 그렇게 습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공항 앞에 서 있던 현지인 중의 한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뚝뚝!”

툭툭이 운전사였다. 한국에서는 ‘툭툭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발음은 ‘뚝뚝’에 가까웠다. 가이드가 오기로 했으므로 어색하게 웃으면서 돌아섰다. 뚝뚝, 땀을 흘리면서.

말소리마저 기후를 닮는가 싶었다. 라오스보다 바람 많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뚝뚝’보다는 ‘툭툭’이 더 어울린다고 느낀다. ‘뚝뚝’이란 말에 바람이 들면 ‘툭툭’이 된다.

다음 날 아침, 길가에서 야자 하나씩 사서 빨대로 빨아먹었다. 들큼하고 느끼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야자열매 속 음료수에 밤의 공기가 담겨 있었다. 밤공기가 응축되어 야자열매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국수에 얹어먹던 고수나 야자열매, 밤공기에 떠돌던 냄새가 모두 같은 샘에서 나온 습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한 원소로 구성된 냄새가 짙어지거나 옅어지고, 조금씩 새로운 요소들이 첨가되어 라오스의 대기를 가득 채우고 대기 안의 모든 사물에 스며드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에 따라선 비위가 상할 수도 있는 냄새였다.

독참파. 라오스의 국화다.
독참파. 라오스의 국화다.
해먹에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는 툭툭이 운전사. 가끔 아침부터 자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해먹에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는 툭툭이 운전사. 가끔 아침부터 자고 있는 사람도 있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야시장을 기다리기엔 하루가 너무 길었다. 딸랏사오 쇼핑몰에 가서 돼지고기를 푹 우려낸 육수에 만 쌀국수를 먹고 지하로 내려갔다. 가이드인 임동섭(46)씨가 “한국인들은 봐도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작은 미용실이었다. 머리를 깎을 생각은 없었다. 임씨는 “머리를 감겨주는 곳”이라고 했다. 태국에서 온 아가씨 세 명이 일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샴푸의 요정”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뜻을 아는지 아가씨들이 환하게 웃었다.

“관광객들은 보통 미용실인줄 알고 그냥 지나칩니다. 이 지역은 물에 석회질이 많아서 거품도 잘 안 나는데, 여기에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뽀송뽀송해집니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만 감겨준다는 건 과잉서비스 같았다.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여서 가능한 서비스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 셋이 나란히 누워서 태국에서 온 아가씨들에게 머리를 맡겼다. 30분 동안 샴푸를 세 번이나 했다.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중노동이 어딨을까 싶었다.

샴푸를 끝내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라오스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였고, 언어는 태국어와 유사하다고 했다. 게다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나 노래가 대부분 태국에서 만든 것들이라고 했다. 대중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셈이었다. 자기들만의 대중문화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걸까 궁금했다. 그런 상황이 의아하게 다가왔다. ‘프랑스 혁명’을 완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군가인 ‘라 마르세예즈’나 우리나의 ‘아침이슬’도 말하자면 대중문화다. 역사가 휘어지는 지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이끌어갈 고유한 대중가요와 이야기가 없다니…. 라오스인들의 정서가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가이드가 ‘샴푸의 요정’이라고 소개한 아가씨들. 태국에서 왔다고 했다. 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약 5800달러로 라오스와 비교해 1.5배를 조금 상회한다. 라오스는 3700달러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쇼핑센터인만큼 샴푸 비용이 현지인들에게 만만치 않은 가격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가 ‘샴푸의 요정’이라고 소개한 아가씨들. 태국에서 왔다고 했다. 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약 5800달러로 라오스와 비교해 1.5배를 조금 상회한다. 라오스는 3700달러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쇼핑센터인만큼 샴푸 비용이 현지인들에게 만만치 않은 가격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야시장은 해가 지기 전부터 북적댔다. 부스가 300개가 넘었고, 부스 사이에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가득 들어찼다.

야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조용하다는 거였다. 한국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몇 안 되는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솟았다.

라오스 상인들은 호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님과 눈 마주치는 걸 외면하려는 듯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가이드 임씨는 “천성이 그렇다”고 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낙천적인 사람들입니다. 늘 계획을 짜서 살고 뭐든 아등바등 달려드는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답답하겠지만, 그것이 라오스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간혹 사람 사이로 개들이 다녔다.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몇 십 m씩 따라갔다. 먹을 걸 던져주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낮에 본 개들은 말 그대로 개 같았다. 축 늘어져서 사람이 다가가면 경계를 하거나 짜증스런 눈빛을 보냈다. 물까봐 다가가기 두려웠다.

개들이 늘어져 있는 반면 참새들은 명랑했다. 가을 아침처럼 파득 파득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그에 비해 의욕이라곤 없어 보이는 개들은 밉상이었다.

부스를 돌다가 ‘쎈 언니’ 스타일의 상인을 만났다.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낯이 익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배우 박예리와 이미지가 비슷했다. 범접할 수 없는 쎈 기운 때문에 인터뷰에 앞서 잠시 머뭇거렸다.

어렵게 말을 걸었다. 이름은 흐엉(26). 베트남에서 왔고 장사한 지는 8년이 됐다고 했다. 라오스 상인들보다는 훨씬 강단 있고 활기찼다.

“어느 나라든 이민자들이 열심히 살잖아요. 이 나라 사람보다 더 부지런하죠.”

가이드의 말이었다. 김민규 기자가 신발을 샀다. 그런 후에야 흐엉에게 사진 한 장을 청했다. 역시 포스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다음에 만난 상인도 베트남 출신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부스였는데 딸 부잣집이었다. 부스 중앙에 딸 셋이 앉아서 놀고 있었다. 남편은 이름이 ‘꾸엔’이라고 했다. 서른다섯. 계획을 묻자 “열심히 돈 벌어서 차도 사고 땅도 사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사이 그의 부인이 기자를 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사람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넌 동남아에선 통하는 외모야.’ 역시, 그렇구나!

가슴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쎈 언니’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기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때, 가이드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저 여자 분이 당신 티셔츠 거꾸로 입었다고 그러네요!”

상인 부부는 물론이고 일행까지 모두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허술한 실수 하나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문 셈이었다. 어쨌든 통하긴 통했다. 그 웃음 한번으로 무거운 가방처럼 어깨에 걸쳐져 있던 긴장을 떨쳐버렸다.

메콩야시장에서 만난 베트남 상인. 배우 한예리 씨와 도플갱어가 아닌가 할 정도로 닮았다. 강한 인상 때문에 선뜻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메콩야시장에서 만난 베트남 상인. 배우 한예리 씨와 도플갱어가 아닌가 할 정도로 닮았다. 강한 인상 때문에 선뜻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절에서 만난 센 스님. 센 언니 흐엉만큼이나 말을 걸기 무서웠다.
절에서 만난 센 스님. 센 언니 흐엉만큼이나 말을 걸기 무서웠다.

다음 날엔 태국을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목적지는 우돈타니. 태국의 4대 도시에 든다고 했다. 2시간 남짓 달려 센트럴 프라자에 도착했다. 쇼핑몰이었다. 라오스의 수도가 시골로 느껴질 만큼 화려했다.

센트럴 프라자에서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 미용실로 들어갔다. 가위를 대야 할 만큼 텁수룩하진 않았지만 태국인의 솜씨가 궁금했다. 미용사 중에 게이가 한 명 있었다. ‘그 또는 그녀가’ 우리를 제일 반갑게 반겼다.

그날,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가위를 대기 전에 머리를 먼저 감긴다는 것이었다. 날씨도 후덥지근한 데다 물도 시원찮아서 떡 진 머리가 많을 것이다. 분명 이 나라 사람들에겐 머리를 감는 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일인 듯했다. 라오스에서 만났던 ‘샴푸의 요정’들도 그저 인건비가 낮아서 생긴 직업이 아닐 거였다. 이 나라의 자연 환경이 빚은 삶의 모습이다. 오해가 한 꺼풀 벗겨졌다.

비엔티안에 돌아와 다시 야시장을 찾았다. 오후에 비가 한 차례 퍼부은 탓에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가이드가 “1년 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내는데 비가 오면 문을 못 열기 때문에 장사가 녹록치 않다”고 설명했다. 부스 하나에 권리금이 3,000만원이라고 했다. 부스를 임차한 사람이 다시 상인들에게 재임대를 하는데, 한 달 임대료가 30만원이라고 했다. 라오스에서는 결코 만만찮은 돈이다.

이들이 호객하지 않는 것이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문화란 확신이 더더욱 강해졌다. 딸랏사오 쇼핑몰 상인들은 분명 달랐다. 하나 같이 손님이 지나가면 물건을 들고 “텐 달러! 텐 달러!” 호객 행위를 했다. 우리나라 상인들처럼 춤을 추면서 “골라 골라”하고 노래를 부르진 않았지만 여자들이 옴찔 뒤로 물러설 만큼 목소리가 높았다. 외모도 한국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를 닮은 듯했다.

말하자면, 라오스 상인들보다 훨씬 쎄 보였다. 요컨대, 이들은 상대하는 고객이 누군가에 따라 파는 방법을 바꿀 뿐인 것이다. 상인이 물건을 많이 팔고 싶어 하는 건 어느 나라나 같겠지만, 손님의 스타일에 따라 상술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부스가 절반도 열리지 않았지만 다행히 어제 만났던 ‘쎈 언니’ 흐엉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휴대폰에 배우 한예리의 사진을 띄워서 보여줬다. “한국에서 유명한 영화배우이고 당신을 무척 닮았다. 두 사람 다 예쁘다”고 했더니 흐엉의 얼굴에 홍조가 들었다. 그랬다. “예쁘다”는 말은 여자의 마음을 여는 마법의 열쇠였다. ‘쎈 언니’가 예쁘단 말에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마법의 주문’ 덕분에 메콩 야시장 한예리와의 사진 촬영은 성공했다.

돌아오는 길에 하얀 꽃 한 송이를 땄다. 독참파. 라오스의 국화였다.

문득 향기가 궁금했다. 킁킁, 냄새를 맡았다. 독참파에도 공기 중에 미열처럼 감도는 라오스의 냄새가 풍겼다. 이 꽃에서 나온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고 과일과 사람의 피부로 스며든 게 아닐까 싶었다. 가이드가 말했다.

“향기가 좋죠? 샤넬NO.5 원료가 거기서 나온 거라네요.”

내게는 라오스의 냄새가 샤넬NO.5의 향취란 말로 들렸다. 그 향수를 즐겨 쓴 마릴린 먼로 곁에선 라오스의 냄새가 감돌았을까. 왠지 그랬을 것 같았다.

이틀째 저녁, 흐엉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결국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옆에서 일을 거들던 그녀의 남동생이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모르긴 해도 “우리 누나 졸지에 스타됐네!”하는 의미였을 듯.
이틀째 저녁, 흐엉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결국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옆에서 일을 거들던 그녀의 남동생이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모르긴 해도 “우리 누나 졸지에 스타됐네!”하는 의미였을 듯.
파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적극적인 라오스 야시장 풍경.
파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적극적인 라오스 야시장 풍경.

다음 날은 일정의 마지막 이었다. 시장은 충분히 둘러보았고, 공식적인 투어는 없었다. 8시에 눈을 뜨자마자 숙소 옆에 있는 마사지샵으로 갔다. 지난밤에 예약을 해놓았었다.

지난밤, 야시장을 둘러본 후 시장 가까이에 있는 마시지샵에 들렀다. 발 마사지 전문이었다. “2개국을 걸어 다녔으니 피로를 풀고 자야 다음 날 개운하다”는 김민규 기자의 주장에 따른 결정이었다. 가이드가 두 여자의 이름을 알려줬다. 녹과 낭노이. 각각 19살과 28살 아가씨였다. 가이드는 “4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들인데 참 착하다”고 말했다. 3일이긴 하지만 라오스 사람치고 악의를 드러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착하단 말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마시지는 처음이었다. 효과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발마사지가 끝났지만 온 몸의 피로가 풀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사실은 애초 피곤한 느낌 자체가 없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서비스’ 차원에서 어깨 마시지를 할 때였다. 어깨를 꾹 누르는데 아파서 “아앗!” 신음을 토했다. 그러자 낭노이가 물었다.

“딥와?”

‘딥’은 아프다는 뜻이었다. 나는 말뜻을 이해하자마자 외쳤다.

“딥딥딥!”

다음 날 아침, 결판을 내자는 기분으로 샵에 들어갔다. 바닥에 눕게 한 뒤 본격적으로 어깨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다리 한 짝이 허공에 올라오기도 했을 만큼 ‘딥’했다.

“당신 꼭 의사 같은데?”

그는 영어를 잘 알아 듣지 못했다. 가이드가 오고 나서야 내 말을 전했다. 환하게 웃었다.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이 친구는 물리치료학과 교수에게 마사지를 배웠어요. 그래서 의학적인 바탕이 깔린 마사지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가이드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의 맵짠 손길이 이해가 됐다. 어깨도 한결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이드와 기자 둘, 녹과 낭노이, 이렇게 다섯 명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10시에 식사를 하는데 식전에 들이닥쳐 1시간 가까이 중노동을 시킨 미안함 때문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더 미안해지는 말을 들었다.

“이 친구들 사실 오늘 쉬는 날입니다.”

두 기자의 입에서 “어이쿠야”하는 말이 저절로 쏟아졌다. 가이드가 “그럼 오늘 이 친구들 점심 사주세요”하고 말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 시간쯤 뒤에 다시 샵에 들러 가이드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한 시간쯤 떨어진 강변에 있는 선상식당이라고 했다.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녹은 팍세, 낭노이는 방비엥이 고향이었다. 각각 12시간, 3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라오스에서 큰돈을 만지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 투자자에, 좋은 인력으로 대우받는 사람들은 베트남 혈통이거나 베트남 출신이다. 라오스 사람들이 설 자리에 별로 없다는 거였다.

“이 친구들도 오전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합니다. 잠은 2층에서 자구요. 볼 때마다 피곤해 보입니다.”

가는 길에 전통시장에 들렀다. 낭노이가 바나나 튀김을 샀다. 한턱 낸 셈이었다. 바나나를 기름에 튀기니까 맛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자주 웃었고,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이 새장에서 튀어나온 새처럼 폴폴 뛰어다니는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과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 때문일까. 두 기자는 조금씩 망가졌다. ‘덤 앤 더머’ 같아 보였다고 해도 변명할 마음은 없다. 차 안에서 막간 공연을 펼쳤다. 지역 가수협회 송년 모임에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외국인에게 가장 어필하는 노래는 트로트라는 걸 확인했다. 팝을 부르자 ‘제법 부르네?’ 하는 표정이었고, 발라드 앞에선 ‘이 남자 갑자기 왜 이래? 분위기 썰렁하게’ 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트로트는 꺾을 때마다 엄지를 치켜들고 박수를 쳤다. 나훈아의 ‘무시로’, ‘영영’, ‘고향역’ 세 곡 메들리에 차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전통시장 입구에서 한 컷. 오른쪽에 선 두 여성이 녹과 낭노이다.
전통시장 입구에서 한 컷. 오른쪽에 선 두 여성이 녹과 낭노이다.

선상 식당에 도착해서는 다 같이 자리에 앉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기자들과 가이드는 어른 몸통만한 메기에 놀라 셀카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배 난간에 기대어서 셀카를 찍었다. 그 순간 다섯 명 모두 관광객이었다.

직원들도 친절했다. 맥주와 콜라를 시켰는데, 테이블에 병을 놔두는 게 아니라 잔이 빌 때마다 테이블로 와서 잔을 채웠다. 테이블로 다가올 때마다 직원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종업원들이 한국 남자들 멋있다고 속닥거린답니다, 하하!”

가이드가 낭노이의 말을 우리에게 전했다. 그렇다. 우리는 동남아에서 먹히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천국의 만찬’을 즐겼다.

“컵짜이 더!”

식사가 끝난 후 녹과 낭노이가 두 손을 합장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도 똑같이 손을 모으고 한국말로 고맙다고 했다. 모두 다 좋았다.

“저기로 가면 우리 집이 나와요.”

돌아오는 길에 낭노이가 대로변 옆으로 난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길로 3시간쯤 달리면 고향집이 나온다는 말인 것 같았다. 쓸쓸하거나 허전한 표정이 깃든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공항만 보면 저기에서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곳에 비엔티안이 있는데, 하고 말할 것 같네요.”

가이드가 통역을 했고, 두 사람 모두 호호, 웃었다.

마음에도 혓바닥이 있다면 미각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그리움일 것이다. 일상에 파묻혀 앞뒤 돌아볼 틈도 없는 사람에게 그리움 같은 건 없다. 혓바늘이 돋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은, 마음의 혓바닥조차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짧은 소풍으로 낭노이는 집이 그리워졌고, 나는 어느새 라오스라는 마음의 고향 하나를 새로 얻었다.

감각과 정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이란 얼마나 윤기 있고 탱글한가.

밤으로 떠났다가 라오스를 만났다. 메콩 강에서 잡은 생선처럼 퍼덕거리는 야시장과 진흙투성이 흙길을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녹과 낭노이가 살고 있는 곳…. 라오스에서 마주친 풍경과 함께 어울린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도 새로운 활력이 솟지 않을까 싶었다. 마릴린 먼로가 독참파에서 추출한 향기로 적막한 밤을 견뎌 낸 것처럼.

가이드를 맡은 임동섭(46)씨. 8년 전 라오스에 정착했고, 2011년 라오스 여인과 인연을 맺었다.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있다. 사흘 내내 붙어 다니면서 두 기자와 형님 동생 사이가 됐다.
가이드를 맡은 임동섭(46)씨. 8년 전 라오스에 정착했고, 2011년 라오스 여인과 인연을 맺었다.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있다. 사흘 내내 붙어 다니면서 두 기자와 형님 동생 사이가 됐다.
태국으로 건너가는 길, 세 사람이 함께 보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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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검표를 하는 중년 남성의 어깨를 주물러주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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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동안 사회관계망(SNS)서비스 친구로 지낸 라오스인을 실제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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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서 만난 라오스 예비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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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달에는 도마뱀이 산다? 가로등에 올라 앉은 도마뱀을 촬영했다.
라오스의 달에는 도마뱀이 산다? 가로등에 올라 앉은 도마뱀을 촬영했다.

글=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사진=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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