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있는 실내에 ‘셀프 감금’
심야 한강 텐트족 발길 끊어 썰렁
에어컨 과열 화재 지난해 2배나
쪽방촌 살수차 동원해 골목 식혀
직장인 조모(34)씨는 지난 4일 친구들과 서울 인근 글램핑장에서 야간 바비큐파티를 하던 중 30분만에 실내 객실로 들어와야 했다. 오후 9시인데도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계속된 탓에 불판 앞에서 고기를 굽는 동안 땀이 비 오듯 쏟아졌기 때문이다. 조씨는 “밤이면 그래도 날씨가 선선해질 줄 알았는데 온몸을 땀으로 샤워하고 나니 야외에 비치된 텐트에서 도저히 잘 엄두가 나질 않았다”며 “준비해 간 고기를 절반 이상 남기고 실내 객실로 돌아와 에어컨을 틀고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펄펄 끓는 가마솥 더위가 밤낮 가리지 않고 수일째 이어지면서 폭염이 낳은 진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에어컨이 풀 가동되는 실내에만 머무르려는 ‘셀프 감금’ 현상이 대표적이다. 35도를 넘나드는 낮 시간대는 물론이고 야간에도 30도 가까운 무더위가 이어지다 보니 한강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열대야를 이기던 ‘한강 피서’는 옛말이 되고 있다. 더위를 피하려고 밤에 한강을 찾아도 집보다 더운 열기를 실감하고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로 다시 피신하기 일쑤다.
6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인근 카페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45)씨는 “강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너무 더워 실내로 들어왔다”며 “이런 날에는 집에 있는 게 훨씬 낫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0)씨도 “시원한 강바람을 기대하며 남자친구와 심야 데이트를 나왔는데 너무 덥고 습하다”며 손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떼지 못했다.
심야 한강 피서객이 줄다 보니 인근 상인들도 매출이 급감해 울상이다. 여의도 한강공원 푸드트럭에서 스테이크를 판매하는 이모(51)씨는 “5월만 해도 하루 평균 150인분을 팔았는데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매출은 절반도 못 미친다”고 하소연했다.
무더위로 에어컨이 혹사당하는 수준으로 밤낮 가동되는 탓에 실외기 가열로 인한 화재도 급증하고 있다. 7일 서울종합방재센터에 따르면 올해 7월 서울 지역 에어컨 관련 화재 출동 건수는 21건으로 지난해 7월(10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6일 오후 2시 강남구 역삼동 소재 주택에서도 에어컨 실외기 과열로 불이 났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서 관계자는 “큰 불은 아니라 진화는 금방 했지만 폭염으로 밤낮 없이 에어컨을 켜는 탓에 과열 사고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폭염이 맹위를 떨치면서 쪽방촌의 여름 나기는 더 힘겨워졌다. 530여명이 모여 사는 서울 영등포 쪽방촌은 1960~70년대 지어져 건물 구조가 취약한 탓에 냉방도 열악하다. 쪽방촌 주민 정모(48)씨는 “주변 온도가 하도 높아 선풍기를 오래 틀어놔도 더위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영등포소방서는 오후 2시마다 살수차를 끌고 나와 쪽방촌 골목과 지붕에 물을 뿌리고 있다. 영등포소방서 관계자는 “지난해는 7월 중순부터 시작했지만 올해는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 6월 말부터 시작했다”며 “쪽방촌 주민들에게 얼음물과 선풍기, 부채를 제공하고 온열환자를 점검하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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