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수사하려던 女총장에
면책특권 빼앗고 “비위 조사” 역공
야권 장악한 의회 기능 대체 시도
남미 공동체 메르코수르도 반발
회원국 권한 정지 무기한 연장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지 세력 545명으로 구성된 베네수엘라 제헌의회가 마두로 정권을 비판해 온 루이사 오르테가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발 빠르게 국정 장악에 나섰다. 중남미 국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국가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마두로 대통령의 제안 아래 선출된 제헌의회는 5일(현지시간) 첫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오르테가 총장 해임을 결정했다. 제헌의회 결정에 따르면 오르테가 총장은 향후 공무를 담당할 수 없고 출국도 할 수 없으며 재산도 동결됐다. 이는 오르테가 총장이 지난달 30일 진행된 제헌의회 선거의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반격성 조치다.
제헌의회의 움직임이 다른 친정권 정부기관과 사전 조율된 정황도 드러났다. 베네수엘라 정부군은 이날 아침부터 검찰청 앞을 장악, 오르테가 총장과 직원들의 출근을 막아섰다. 역시 친정권 성향인 대법원도 오르테가 총장이 공직자로서 면책특권을 상실하자마자 그의 검찰총장 시절 비위 의혹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이날 저녁 바로 후임 총장으로 지명된 타렉 윌리엄 사브는 제헌의회의 갈채를 받으며 취임 일성으로 “폭력 시위대를 엄단하겠다”며 반정부 진영을 겨냥했다.
당초 헌법 개정 논의를 목적으로 수립된 제헌의회는 야권이 장악한 의회의 기능을 대체하고 국정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으려 시도하고 있다. 검찰총장 해임에 이어 당초 6개월이었던 활동기한을 자체 결의를 통해 2년으로 연장했고 ‘진실ㆍ정의와 평화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집회로 인한 폭력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델시 로드리게스 제헌의회 의장은 “경제전쟁과 심리전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렸던 폭력적 우파 파시스트들에게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남미 지역기구는 마두로 정권의 노골적인 국정장악 움직임에 반발했다. 남미 경제공동체 메르코수르는 이날 베네수엘라의 회원국 권한 정지 조치를 무기한 연장했다. 미주기구(OAS) 인권위원회는 오르테가 총장 해임에 앞서 그의 신변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사전예방조치’를 허가했고 그가 검찰총장으로서 독립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두로 정권은 이를 무시했다.
마두로 정권은 지난 1일 야당 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와 안토니오 레데스마를 연행한 데 이어 이날 검찰까지 무력화했지만 야권은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폭력사태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전면 내전이나 쿠데타로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2002년 우고 차베스 전임 대통령을 향한 쿠데타가 제압된 이후 베네수엘라 군부는 철저히 문민 통제되고 있는 데다 미국 등 주변국도 국제 제재를 넘어서는 개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다”고 MSNBC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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