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12년 대선 직전 민간인 3,500명을 조직적으로 운영해 여론조작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특수활동비를 이용해 이명박 정부의 통치 보조용 여론조사를 다수 실시해 청와대에 보고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공작은 전체 대선 공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 적폐청산TF의 자체 진상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광우병 촛불 시위로 위기에 놓이자 2009년 반정부 여론 희석을 목적으로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을 만들었다. 규모는 매년 커져 2012년 대선직전에는 30개 팀으로 불어났다. 예비역 군인, 회사원, 주부, 학생, 자영업자 등 보수ㆍ친여 성향 지지로 구성된 ‘댓글 부대’는 수당을 받고 주요 포털과 트위터에 친정부 성향 글을 올렸다. 2012년 한 해 동안 이들에게 지급된 돈만 30억 원으로 전체 운영기간에 100억 원 이상 예산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치 개입이 금지된 국정원이 민간인들에게 돈을 주고 민심과 여론을 조작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권에 유리한 선거 정보와 야당 유력 정치인들의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도 사실로 드러났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서울시민의 여당 지지도와 민심흐름을 분석해 보고하고, 손학규, 우상호, 박원순 등 야당 정치인들의 동향을 담은 문건을 작성했음도 이번에 확인됐다.
이런 일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실제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문건은 2011년 “SNS를 국정홍보에 활용하라”는 청와대 회의 내용을 전달받고 국정원이 세부전략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다. 이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된 뒤 곧바로 국정원 심리전단 1개팀(35명)이 증원된 것은 댓글 조작을 통한 대선개입도 청와대와의 교감을 통해 이뤄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정원 여론조작의 전모가 드러난 만큼 검찰의 재수사도 불가피해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돼 선고를 남겨두고 있지만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상황이라 원점 재수사에는 문제가 없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 전 대통령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관련 수사가 본격화하기에 앞서 이 전대통령부터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행위와 관련된 국정 최고 책임자의 침묵은 정치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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