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스캔들로 궁지 몰리자
한일관계 개선으로 반전 노려
정권 붕괴 우려에 온건파도 기용
내년 총재선거 위한 포석 역할
“아베 외교 기조는 안 바뀔 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8ㆍ3 개각’을 통해 ‘고노 담화(1993년)’ 주인공 아들을 외교수장으로 발탁, 그 의도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일 19명의 각료 가운데 14개 자리를 교체한 아베 정부의 세 번째(2014년 12월부터 임기인 3차 내각) 개각을 통해 외무장관 자리에 오른 고노 다로(河野太郞ㆍ54) 전 국가공안위원장은 위안부에 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장남이다.
그러나 그의 입각 첫날 일성은 “위안부합의는 착실히 이행돼야 한다”였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한일합의 검증을 시작한 가운데 그의 발탁이 재협상 및 한일관계에 어떤 득실로 작용할지 주목되고 있다.
아베 정부는 2014년 우익정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나섰고, 이를 한일정부간 정치적 결과물로 폄하한 전력이 있다. 일본 언론에서 이번 인사가 “한국과 중국에 보내는 관계개선 메시지”란 평가가 나온 이유다. 부친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던 친한파라는 점도 의미 있다.
하지만 고노 장관은 정작 첫날부터 “(위안부 문제는)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장관 시대 한일합의로 끝났다”고 못박아 한일관계 난마를 푸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양국관계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한다고 예측하기 어려운 셈이다. 그는 2015년 아베 정부의 행정개혁장관으로 입각한 뒤 “고노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개인적 견해를 말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총리의 말 그대로다”라며 의례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2013년엔 “위안부문제 거짓말을 퍼트린 녀석”이라는 공격적 트윗에 “내가 뭔가를 했나?”라며 아버지와 선 긋기에 나서기도 했다. 오만한 국정운영으로 국민신뢰를 잃은 아베가 온건파인 그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측면이 더 크다는 평가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총리 주변에선 부친이 아베에 비판적이지만 “고노 다로의 안보정책은 현실노선으로 오히려 총리 쪽에 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전했다.
결국 아베 정부는 한국인에게 거부감이 덜한 그를 양국간 ‘완충지대’로 내밀면서, 한국 측의 위안부 재협상 요구를 철저히 방어하는 다목적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첫 시험무대는 6~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한일외교장관 회담이다.
이번 개각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또 다른 점은 자민당 3역(정무조사회장)으로 이동한 기시다 전 외무장관이다. 아베 총리가 차기 행보에 주력하기 위해 당무에 참여하겠다는 그의 요구를 수용한 이유는 온건파마저 돌아설 경우 정권 붕괴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시다파(46명ㆍ제4파벌)는 4명이나 입각할 만큼 우대를 받았다. 일본 정가에선 내년 총재(총리)선거에서 ‘비(非)아베’ 진영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의원과 1대1 구도를 피하고 기시다를 밀어준 뒤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하기 위한 노림수로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 아베 비판론자인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의원의 총무장관 기용은 “내각에 예스맨만 있지 않다”는 효과 연출용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번 개각이 당장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부총리(아소 다로)와 관방장관(스가 요시히데)이 유임돼 쇄신 이미지는커녕 변한 게 없다는 반응도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개각 기자회견에서 사학스캔들에 대해 다시 대국민사과를 하며 수초간 고개를 숙이는가 하면 “헌법개정 일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밝혀 개헌일정 보류 뉘앙스까지 풍겼다. 개각면면을 내놓고 철저히 엎드린 것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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