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관광도시 베네치아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광객들이 도시를 점령, 정작 주민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관광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관광산업으로 일상을 위협받고 있는 베네치아인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다. 우선 이들은 민박과 호텔이 들어차 살 곳이 줄고 장기 렌트가 어려워지면서 육지인 메스트레(Mestre) 등으로 내몰리고 있다. 베네치아에 살고 있는 한 시민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시에 대해 “베네치아가 바다 위의 디즈니랜드로 전락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 실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17만5,000여명이던 베네치아 시민은 현재 5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이탈리아인들이 베네치아를 떠나면서 도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도 이들이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수공예 가면, 장난감 곤돌라 등 관광상품을 만들어 팔던 이들은 대부분 지역을 떠났다. NYT는 “베네치아 기차역에 내리면 이탈리아인은 없고 쇼핑백과 여행가방들을 볼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라는 착각이 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베네치아 주민 브루노 라바그난은 “정통 이탈리아햄인 프로슈토를 먹고 싶다고 해도 먹을 수 없다. 프로슈토를 만드는 이들이 이 곳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형 유람선(크루즈)에 대한 경계심은 상당히 높다. 하루에 많게는 4~5대의 크루즈가 정박하는데, 매연도 심각하지만 크루즈가 저품질 관광을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레스토랑 종업원인 미켈란젤로 아다모는 “그들은 예술에 관심이 크게 없다.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빨리 이동할 뿐이다. 여기는 미국 마이애미 해변가와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문화부장관도 “큰 배를 타고 들어와 2~3시간 있다가 가는 식이다.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산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등 관광 명소를 재빨리 둘러 보고 간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건축물뿐 아니라 상점, 작업장 등에서 이뤄지는 생활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먹고 도망치듯 떠나는 투어리즘이 도시를 망가뜨린다”고 말했다.
가방 끄는 소리 등 각종 소음은 물론 관광객들의 행동 모두가 베네치아인들에게 고통이다. 오죽하면 지난달 말 당국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벌금을 인상했다. 다리에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면 100유로, 허락 없이 공연해 소음을 유발하거나 건물이나 벤치, 나무 등에 낙서하면 400유로를 내야 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베네치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넥스트시티는 “베네치아뿐 아니라 관광산업의 어두운 면을 걱정하는 도시들이 늘고 있다”며 “예컨대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해진 뉴질랜드는 교통사고, 환경 파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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