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발급 10년 내 절반 감축 계획
“자유의 여신상 정신 버렸나” 비판 목소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족 이민을 대폭 제한하는 방식으로 합법 이민 규모를 10년 안에 절반가량 줄이는 내용의 이민법 개정에 착수했다. 불법 체류자 단속 강화, 이슬람권 국민 입국 금지 등에 이어 합법 이민 영역까지 손을 봐 미국 빗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기술이나 영어 능력 등 기준에 부합하는 이민자만 받겠다는 계획이어서 아시아 등 비영어권 저숙련 근로자들의 미국 이민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되는 셈이다. 미국 언론들은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이민자를 향한 미국의 열린 정신이 무시당했다”라며 트럼프의 일관된 반 이민 정책을 비난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민법 개정안을 제안한 공화당의 톰 코튼,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과 회동한 뒤 “이 법안은 21세기 미국의 경쟁력뿐 아니라 미국과 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회복시킬 것”이라며 두 의원의 법안을 승인했다. 그는 “이 법안은 고통받는 미국 가족의 요구와 미국을 우선하는 이민 제도를 향한 우리의 열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코튼과 퍼듀 의원이 마련한 새 이민법안의 핵심은 가족 관계 이민을 제한하는 대신 이민 신청자의 기술, 교육수준, 영어 능력, 직업 등을 점수제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배우자와 어린 자녀는 현행대로 영주권이 유지되지만, 부모ㆍ성인 자녀ㆍ형제 자매에게 부여되던 권리는 폐지된다. 이 같은 조치로 연간 100만건 규모의 그린카드 발급 수를 10년 내 50만건 이하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의 대졸 이하 노동자들을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 외국의 저숙련 노동자 유입을 막으면 미국 노동계층으로선 취업 기회가 늘고 임금 상승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선 새 이민 정책을 설명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과 기자들 사이 설전이 벌어졌다. 미국 우선주의 실현을 위해 잇따라 전 지구적 가치를 내팽개치는 트럼프 정부를 향한 분노가 터졌다.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는 “자유의 여신상에는 ‘가난에 찌들어 지친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고 씌어있다. 영어를 잘해야, 프로그래머가 돼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비꼬면서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과 호주인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냐”고 따졌다. 이에 밀러 고문은 “자유의 여신상 글귀는 나중에 갖다 붙인 것”이라며 “영어를 잘하는 수백만 명의 전 세계 근로자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 같은 논란으로 의회에서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최근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폐쇄적인 이민 법안 추진만으로도 일부 지지층 결집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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