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착용 사망 429건 증가세
20년 넘게 매일같이 오토바이를 타는 집배원 김모(54)씨는 오늘도 헬멧(안전모) 없이 도심을 누빈다. 업무 특성상 짧은 거리를 자주 이동하면서 여러 번 쓰고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헬멧 착용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한다. 김씨는 “여름엔 덥기까지 해서 나 말고도 안 쓰는 집배원이 많다”며 “주택가 위주로 배달할 때는 주로 작업모를 쓴다”고 했다.
30도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헬멧 착용을 등한시하고 있다. 오토바이를 운전할 때 헬멧을 써야 한다는 건 도로교통법에도 규정된 의무 사항. 하지만 상당수 운전자가 덥다는 핑계, 번거롭다는 이유로 법을 위반하고 안전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헬멧 미착용 오토바이들이 여름철에 부쩍 늘어나는 건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8월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운전하다 경찰에 단속된 건수는 2만6,071건으로, 월평균 2만197건보다 훨씬 많았다. 2015년에는 8월 단속건수(4만8,382건)가 월평균(2만6,722건)의 두 배에 이를 정도였다.
특히 도로와 건물로 빼곡해 ‘열섬 현상(도심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이 잦은 곳일수록 헬멧 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이번만 안 썼다” “헬멧을 쓰면 탈모가 더 빨라진다고 해 안 썼다” 등 다양한 핑계를 댄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범칙금 등 제재 수준이 낮다는 것도 운전자들이 꼽는 이유 중 하나다. 단속이 된다 한들 범칙금 2만원을 내는 게 고작이다. 음식배달원 정모(45)씨는 “범칙금 내겠다는 마음으로 (헬멧을 쓰지 않고) 배달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마저도 경찰 집중단속 시기 때 운 없으면 걸리는 거라고 쉽게 넘긴다”고 말했다.
이 탓에 운전자 안전은 위협당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중랑구에서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오토바이를 몰던 20대 남성이 사고로 뇌 손상을 입어 숨지는 등 헬멧 미착용 사망 사건은 2012년 390건에서 지난해 429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사고는 모든 충격이 운전자에게 직접 가해지기 때문에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사망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덥고 귀찮더라도 자신을 위해 헬멧을 꼭 착용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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