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부려먹고, 술상 차리게 하고
아들 클럽 데려다주고… 발길질ㆍ폭언
“애완견이 죽었다! 헌병대대 전원 소집!”
2011년 8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인적 드문 밤, 수도권 소재 공군 전투비행단 관사 경비 근무를 끝낸 김모(당시 21) 일병은 지금도 잊지 못할 지시를 받았다. 관사에서 키우던 전투비행단장(준장) 애완견을 물어 죽인 떠돌이 개를 잡으라는 것. ‘간첩 색출 작전’에 준할 만큼 관사 주변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다음날부터는 아예 군견반을 비롯한 헌병대원 100여명이 투입됐다. 활주로에 날아드는 새를 쫓는 총까지 동원한 장병들이 관사 주변은 물론이고 부대 안을 들쑤시고 다녔다. 특수작전 투입을 위해 훈련 중이던 헌병대 특수임무반 대원들은 아예 관사 수색에 전념해야 했다. 떠돌이 개를 잡기까지 3개월. 김씨는“일반 헌병대원도 근무 후 휴식 없이 한달 넘게 수색에 동원됐다”며 “지휘관 애완견보다 못한 게 사병 신세구나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대장) 부부가 자행한 공관병에 대한 갑(甲)질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국방장관이 직접 공관 병력 철수를 지시하고 박 사령관을 감사하는 등 군은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 행태를 폭로하는 증언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박 사령관만이 아니라 다수 지휘관들이 사병을 몸종 부리듯 하고 있는 군 내부 계급중심문화를 이 참에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2일 박 사령관 부부 공관에서 복무했던 근무병 다수로부터 추가 갑질 피해 증언을 확보, 재차 폭로했다. 증언에 따르면 2층 공관(528㎡)에 살던 부부가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차게 한 뒤 필요할 때마다 각 층에 설치한 호출 벨을 눌러 물 떠오기 등 잡일을 시켰다. 호출에 늦게 오면 부인은 “느려터진 굼벵이”라고 폭언하거나 “한 번만 더 늦으면 영창에 보내겠다”고 호출 벨을 집어 던졌다. 심지어 발코니 식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며 추운 날씨에 공관병을 발코니에 감금하기도 했다. 조리병은 오전 6시부터 퇴근까지 본채 주방에서 대기하거나 자정까지 일하기 일쑤였다.
이들은 박 사령관이 공관 마당 개인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때면 여기저기 흩뿌려진 공을 주워와야 했고, 부인 지시로 일요일마다 자신 종교와는 무관한 종교행사에 강제로 참석해야 했다. 특히 부인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너희 엄마가 너 휴가 나오면 이렇게 해주냐”는 식으로 부모에 대한 모욕도 일삼았다. 센터 측은 “아내의 행위를 묵인하고 본인 역시 직권을 남용한 박 사령관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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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병에 대한 상관의 갑질 및 범죄 행위는 사실 잊을만하면 터지는 군의 고질이다. 지난달에는 육군 39사단 문병호 사단장(소장)이 공관병들에게 이유 없는 폭행 및 욕설을 가하고, 한밤에 술상을 차리게 하거나 대학원 과제를 시킨 사실이 폭로돼 보직해임을 당했다. 2015년 5월 최차규 공군참모총장(대장)은 운전병에게 관용차로 자신의 아들을 홍대클럽에 데려다 주라는 등 사적 지시를 내리다 엄중경고를 받았다. 공개되지 않았을 뿐 부인 등 지휘관 가족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 공관병 출신은 “사실상 하인이나 시종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동료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단순히 박 사령관 같은 고위장성과 공관병 간 문제도 아니다.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는 게 제대 장병들 주장이다. 상당수 군 장병이 간부들이 저지르는 일상적인 인권침해와 갑질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육군을 제대한 대학생 김모(26)씨는 “중대장이 전역 후 스타트업 대회에 제출할 사업 모델을 만들겠다며 행정병 5명을 일주일 동안 새벽 3,4시까지 동원한 일이 있었다”라며 “심지어 휴가 때조차 연락해 자신의 사업을 도울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역을 앞둔 지휘관으로부터 자기소개서를 써달라는 ‘부탁 아닌 지시’를 받은 이도 있었다.
이런 몹쓸 관행과 적폐가 단기간 내 바뀌기는 어렵다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당장 송영무 국방부장관이본인 공관의 근무 병사를 모두 철수시키고 공관병 제도 대체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속칭 테니스병 골프병 등 비편제 장병들 규모는 군이 공개하지 않아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며 “갑질이 횡행하는 군 문화와 비전투 업무를 장병들에게 부과하는 비정상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공관병 폐지 정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말 몇몇 국회의원이 군 간부의 사적 지시를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했지만 결국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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