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건국 명시ㆍ촛불혁명 폄훼
당내서도 “이도저도 아닌 잡탕”
‘서민중심경제’ 문구 포함에
유동열 위원 “反시장 반대” 사퇴
자유한국당이 ‘1948년 건국론’과 광장민주주의 배격 주장을 담은 혁신선언문을 발표해 비판을 자초했다. 선언문에 명시한 ‘서민경제중심’에 반발해 혁신위원이 사퇴하는 등 잡음도 일었다.
류석춘 한국당 혁신위원장은 2일 혁신의 방향을 ‘신보수주의’로 천명한 혁신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선언문에서 뉴라이트 사관을 그대로 옮겨오거나,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로 불 붙은 ‘촛불의 광장 민주주의’를 폄훼해 수구적 시각을 노출했다.
혁신위는 선언문에서 당의 이념적 근간이자 역사적 뿌리를 “1948년 건국 이후 자유민주진영이 일궈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아”라는 문구로 명시했다. 임시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한 1919년 건국이 아닌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브리핑에서 이옥남 대변인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48년 건국이란 개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해 논란을 키웠다.
선언문은 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신보수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하며, 더불어 사는 공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덧붙였다. 대의제인 정당정치의 실패로 촛불 민심이 일었는데도 이에 대한 원인 진단이나, 반성은 담기지 않았다.
보수의 위기를 부른 원인 진단도 모호했다. “한국당은 계파정치라는 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고 급기야 야당의 하나로 전락한 참담한 현실을 맞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이나 당의 방조, 친박계의 전횡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탄핵에 대한 평가도 접어둔 채 “이에 20대 총선 공천 실패,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고만 언급했다.
논란의 선언문에 당내에서도 “혁신의 방향이 수구다”,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노선의 경우 “산업화 세대의 기득권은 물론 강성귀족노조 등 민주화 세대의 기득권도 비판하고 배격한다”는 내용과 “중산층과 서민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서민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을 병렬로 배치해 혼란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통 끝의 선언문 발표와 함께 일부 혁신위원이 사퇴하는 바람에 뒤끝도 개운치 않았다. 혁신위원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한국당이 서민중심경제를 지향한다는 것은 헌법적 가치 중 하나인 시장경제에 반하는 것으로 용납할 수 없다”며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유 원장은 “최종문안을 위원장에게 일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분명 제 잘못”이라면서도 “헌법과 한국당의 강령, 당헌의 기본적 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 위원장의 사퇴에 혁신위도 “일방적 사퇴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서민중심경제에서 ‘중심’이란 단어가 포함됐다고 시장경제, 법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가 설화만 키웠다. 유 원장이 이에 “시장경제에 반한다고 한 것인데 혁신위가 초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제 사퇴의 변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 입장을 내 서로 체면을 구겼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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