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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행복세상] 한얼극단 무언극의 외침(?)

입력
2017.08.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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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 어린이와 함께 관람

7인 가족이 도맡아서 극단 운영해

아낀 돈으로 문화 즐길 수 있기를

필자는 지난 7월 15일 서울 대학로 한얼극단을 찾아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40여 명과 함께 연극 ‘기억해봐’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1시간 15분 내내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무언극이다. 관람 전에는 초등학생들이 그 긴 시간을 참고 관람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기우였다. 관람하는 동안 배우들과 어우러지기도 하면서 흥겹게 즐긴 후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뒤풀이까지 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지역아동센터란 과거 동네 별로 있던 공부방을 아동복지시설로 개편한 시설이다.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저소득층 아동들을 보호하고 교육도 시키며 건전한 놀이나 오락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다.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프랜즈(자원봉사자)가 몇 년째 봉사하고 있는 이 센터의 아동들에게 이번에는 특별히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무언극 관람을 기획하게 되었다.

통계청장 시절 필자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전 직원 및 그 자녀들과 함께 관람한 적이 있다. 오페라는 어린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 한 번이라도 관람하고 나면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훨씬 친숙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도해 본 행사다. 문화는 결코 사치품이 아니다. 아는 만큼 느끼고 즐긴다. 비즈니스 상담에서도 문화 이야기가 곁들여 진다면 훨씬 더 격조 높은 대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워질 때면 맨 먼저 절감하는 항목이 문화 활동비이다 보니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환경은 어렵기만 하다.

2002년에 대학로에 문을 연 한얼극단의 스토리는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 대처하는 한 문화예술인의 꿋꿋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로니까 포스터만 붙이면 관객은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관객이 거의 없는 상태로 공연을 계속하면서 빚만 늘어갔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기는 극단이 부모와 다섯 남매 7인으로 구성된 가족극단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감독 겸 연출을 맡고, 장녀와 차녀는 '거울인형'의 배우로, 3녀와 4녀, 막내아들은 ‘기억해봐’의 배우로 무대에 서고 있다. 무대 장치와 음향 시설은 어머니가 맡는다.

영어 강사, 자동차 딜러, 회사원 등으로 자녀가 모두 ‘투잡’을 뛰는 덕분에 한얼극단은 존속이 가능하다. 대학로의 많은 배우들처럼 연극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투잡을 뛰지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중에 사회인으로 겪는 스트레스가 주말 무대 위에서 해소될 뿐 아니라 굳이 영감을 찾아 다니지 않고도 저절로 얻어지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얼극단은 아무리 어려워도 관객을 모으기 위한 홍보는 하지 않는다. 홍보를 시작하면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더 많은 관객을 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할인 티켓이나 무료초대권도 발행하지 않는다. 할인 티켓이나 무료초대권은 연극인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고, 정당한 입장료를 내고 보는 것이 연극인이 정성을 기울여 만든 연극의 가치를 인정하는 행위라고 믿는다. ‘관객이 제 돈으로 표를 사서 입장해야 진지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신념을 한얼극단은 대학로에서 무언극으로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관람 행사에서 필자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첫째, 아동들과 함께 관람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수준에 맞게 문화를 이해하고 소화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센터의 아동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인공지능 세상이 될 것이다. 그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암기능력이 아니라 문화적 감수성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으로, 가족 전원이 무언극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한얼극단을 보며 가정의 행복, 가족 간의 대화 같은 소중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끝으로, 부정청탁방지법의 유탄은 화훼농가나 과수농가만 맞은 것이 아니다. 공짜 표 생길 때나 보러 가는 공연이 아니라 다른 데서 아껴서라도 문화를 즐기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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