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일본 NHK를 통해 접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바쁘게 뉴스를 전달하는 도중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관저 앞으로 화면이 이동했다. 아베 총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취재진이 달려가 정부 입장과 대응을 물었고, 아베 총리의 답변하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이는 부라사가리(ぶらさがり)라는 일본의 취재 관행이다. ‘매달리다’라는 뜻의 부라사가루(ぶらさがる)에서 파생된 말로, 출퇴근길의 총리를 따라붙어 취재하는 행위를 말한다. 총리 입장에선 답변하기 성가신 질문도 있겠지만 TV카메라 앞에서 질문에 답변한다. 이런 취재 관행은 지난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비교돼 언론에 자주 소개됐다. 사전녹화로 진행된 대국민사과에서도 취재진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은 채 뒷모습만 보이고 사라진 박 대통령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통’을 중시한 것은 당연지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열흘 동안 두 차례 인사발표 브리핑에 등장했고, 대선기간 자신에게 ‘매달려’ 취재한 기자들을 초청해 청와대 뒷편 북한산 산행을 다녀왔다. 부라사가리까진 아니어도 언론부터 정권교체를 실감했다.
청와대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야당은 ‘쇼통(보여주기 식 소통)’이라 비판하지만 청와대는 홈페이지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청와대 구석구석 비추며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 위력은 대단해서,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 신상에 대한 뒷얘기를 물어볼 때면 당황하곤 한다. 그 때마다 분발해야겠다 싶으면서도 취재원을 영상으로 접해야 하는 현실에 입맛이 씁쓸했다. 인사 발표 이후 문 대통령과 취재진이 대화를 나눈 건 한미 정상회담 차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간담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국정에 바쁜 대통령의 일정을 감안하면 일본처럼 매일 언론과 마주할 필요는 없다. 대신 미국 백악관의 눈브리핑(noon briefing)처럼 현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을 기회를 정례화하는 방식도 고려해 봄직하다. 현재 청와대 브리핑은 박근혜 정부의 문건 발견처럼 청와대가 정보를 쥔 사안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다. 그러나 인사검증 부실 논란처럼 청와대가 수세에 몰린 현안에선 책임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탈원전, 증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답변을 얻기 힘들다. 만일 현 정부가 야당이었다면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기습적인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과 “당분간 증세는 없다”고 했던 경제부총리를 머쓱하게 한 증세 논의, 1년 이상 소요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사드 배치를 결정한다는 국방부 발표가 15시간 만에 조기 배치로 바뀐 배경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문 대통령은 최근 재정전략회의에서 의제도 아닌 탈원전을 거론하고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개혁 추진 속도에 몰두하다 언론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문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기내 간담회에서 “회담 성공의 절반은 언론에 달렸다”고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 SNS에선 이러한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열성 지지자들의 “이니(문 대통령의 애칭)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댓글이 넘친다. 그러나 국정 개혁과제를 추진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칭찬보다 비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게 순서다. 그래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정권 초기 고강도 개혁을 예고한 문재인 정부가 비판적 언론과의 소통보다 지지층을 향한 SNS 소통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닌지 초심(初心)을 돌아볼 때가 됐다.
김회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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