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권한 보장” 약속 불구
정부 내각 인사 등 역할 제한적
야권선 “허수아비 총리” 비판도
“핵심 국정과제 당정청 조율 앞장
개혁 주도하는 모습 보여줘야”
“민생 문제는 제가 최종적 권한을 가진 책임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겠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5월 31일 정부서울청사로 첫 출근하며 책임총리에 관한 구상을 밝혔다. 대선 기간부터 책임총리제를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앞선 임명장 수여식에서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 일상적 국정은 총리의 책임이라는 각오로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총리에게 내치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주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 총리 취임 2달이 지난 시점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총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 총리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총리실 간부들에게 물어보면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며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고) 뒤에 가려진 것을 인정해줬으면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전총리, 대독총리는 아니지만, 스텔스총리가 됐다”는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인사권 갖는 책임총리제”은 공약(空約)?
책임총리 실종은 인사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문 대통령은 5월 17일 후보자 신분이던 이 총리를 만나 “인사권을 갖는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 총리가 유의미한 인사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역대 전례 없는 영향력을 갖는 총리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구성에서 이 총리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인사정국에서 야권은 “책임총리로서 문 대통령께 직언을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허수아비 총리”라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검증기관이 없어 인사제청권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반박했지만 총리실 내부 인사도 이 총리가 아닌 청와대가 좌지우지 한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이 총리와 인연이 없는 인사들이 잇따라 총리실 정무직 고위 공무원단 자리를 차지하면서다. 문 대통령의 지역구를 물려 받은 대표적 친문(재인) 인사 배재정 전 의원이 총리 비서실장에, 대선 당시 부산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이 민정실장에 각각 임명되자 청와대 하명인사 아니겠냐는 얘기가 당장 총리실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정책 이슈에서도 총리실은 뒷전
총리실은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포함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 해법을 주도하겠다며 지난달 사드 범정부합동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하지만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 영구중단 등 탈원전 이슈는 정부가 공론화위원회에 사실상 결정권한을 넘기면서 공론화위와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
증세 문제에서도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는 사실상 소외되는 모양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건의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초대기업ㆍ초고득자 핀셋 증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법인세 인상에 신중론을 펼쳤던 정부의 입장이 머쓱해졌다. 그간 “법인세 증세는 현 단계에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강조해왔던 이 총리도 결과적으로 당청과 엇박자를 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 총리는 민생 현장만 열심히 돌고 있다. 취임 후 첫 한달 간 이 총리는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임하며 가뭄ㆍ조류인플루엔자(AI) 현장을 누볐고 이후에는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 관련 행보가 잦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은 “최저임금 문제 등 주요 정책 결정에서 당정청이 적극적으로 조율하는 모습이 안 보이는데 국민들이 책임총리제라고 생각하겠느냐”며 “총리가 기다림을 미덕을 지키기 보다는 앞장서서 말 그대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통합, 총리 개혁 역할 분담 필요”
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이 총리,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배석자 없이 정례 오찬을 하면서 권력분산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청와대가 모든 이슈를 끌고,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챙긴다고 한다면 실패한 박근혜 정부 모델을 답습하게 된다”면서 “새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 상황인 만큼 대통령은 통합ㆍ화합으로 정국을 아우르고, 총리는 개혁을 주도하는 역할 교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개혁 드라이브가 절실한 정권 초기 ‘책임총리’는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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