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선언 실현 가능성 짚고
북핵 다양한 시각서 접근 필요
‘최저임금 위반, 처벌은 고작 1%’
자료 통해 제도의 사각지대 지적
뒷담화식 기사 정치부 카톡 방담
제보조작 사건 개괄적 이해 도움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7월 회의를 열고 탈원전 논란, 한미정상회담 등 보도를 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토의했다. 회의에는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인 이재경 위원장과 독자위원인 류재성 계명대 교수, 조원희 변호사, 구현모(고려대 대학원 재학)씨,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참석했다.
이재경=한미 정상회담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베를린 선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발사, 문준용 의혹 제보조작 사건, 탈원전 논란 관련 보도를 위주로 논의해 주기 바란다. 그에 앞서 긍정적인 것 두 가지를 말하겠다. 독자권익위 첫회의에서 제목에 ‘따옴표를 없애는 게 더 좋은 것 아니냐’는 말씀을 드렸다. 이후 신문 1면 제목에서는 따옴표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안쪽 지면에는 아직 많이 사용한다. ‘뉴스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진다’는 게 신문 종사사의 기본 미션이다. 다른 사람의 발언(따옴표)에 숨으면 안 된다. 또 한 가지는 공영방송이 요즘 내부투쟁으로 난리다. MBC의 강도가 세고 KBS도 그에 못지 않다. 한국일보가 기사도 쓰고 사설로도 다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언론이 저널리즘 생태계를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저런 일이 있으면 모든 매체가 굉장히 중요한 뉴스로 다룬다. 그렇게 해야 그 안에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조원희=탈원전 이슈에서 중요한 문제는 시민배심제도라는 절차가 정당하고 적절한가, 그리고 원전 대체수단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있다. 민주주의의 염원은 선출직에서 뭔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원형이 시민 중 일부를 추첨으로 뽑아 그 사람이 국가 중요사를 결정하게 하는 그 제도로부터 출발했다. 시민배심제도가 이런 민주주의 본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보도가 부족했다. 원전 이후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정부도 특별한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류재성=6월 20일자 1면의 ‘탈핵 선언… 값싼 에너지서 안전한 에너지로’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놀랐다. 에너지 수급 문제가 있는데도 정부 얘기를 그냥 받아썼다. 7월 12일자 ‘편집국에서: 원전과 동거 향후 60년 어떻게 보낼까’는 원전 완전 퇴치까지 60년이 남아 있으니 신중하게 진행하자고 제안했는데 공감한다.
구현모=7월 6일자 ‘원전 3대 핵심기술, 10년 공들여 국산화했는데…’처럼 원자력 업계 이야기를 해줘 좋았다. ‘원자력 없으면 병 치료 어떻게… 환자들 불안감’ 기사는 환자들의 우려만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탈원전 하자는 분들, 하지 말자는 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사는 많았다. 언론사가 적극적으로 묻는 기사는 적었다. 남의 이야기하는 느낌, 외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조원희=7월 18일자 ‘이충재 칼럼: 원전 전문가는 가라, 시민이 옳다’의 경우 제목 자체는 괜찮았다. 전문가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시민이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왜 시민이 이런 부분을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나 근원을 더해서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전문가들이 계속 들고 일어나는 상황에서 점점 시민 목소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재경=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하자고 제안한 베를린 선언을 했다. 남북 간 물밑 접촉 없이 이렇게 가는 게 가능한가, 국내용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언론에서 풀어주지 않는다. 정부가 발표한 것만 쓰고 있다. 대화 제의가 과거 패턴과 차이가 있는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 등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계성=대화 제의 자체는 제재와 상관이 없다.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겠다, 대가로 물질을 보상하겠다는 게 아니다. 일단 제안을 해놓고 분위기를 보는, 응수 타진용에 가깝다고 본다.
류재성=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7월 3일자 3면 ‘트럼프, FTA 재협상론 꺼낸 건 美 여론 달래기’는 기사 내용은 어지러운데 헤드라인은 굉장히 과감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나 북핵 문제에 우리가 운전석에 앉는 대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내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기사는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뒤에 한미는 결국 FTA개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결국 앞서 나간 기사가 너무 단정적이었다.
이계성=정상회담 직후 우리 통상 담당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세게 얘기한 이유가 미국 여론 달래기라는 해석을 많이 했다. 거기에 기자들이 동의를 한 거다. 그렇게 봐야 한다. 다만, 지금에 와서는 그때 말을 너무 쉽게 한 거 아니냐는 비판들이 많았다.
조원희=북핵 관련 보도에서 외교 전문가들, 미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이 나오지만 늘 갈증이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미를 벗어난 시각을 많이 다뤄야 다른 시각에서 북핵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
류재성=지난 한달 헤드라인과 본문이 안 맞는 경우가 꽤 있다. 그 뜻이 바로 이해되지 않는 일도 있다. 7월3일자 11면 ‘김상곤 “재검토”… 수능, EBS와 거리 두나’의 경우 헤드라인만 보면 기사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 4일자 1면 ‘엉터리 예측해도 또 용역 받는 교통硏’의 제목은 자극적이다. 예측이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오차가 날 수 있다는데 엉터리라고 했다.
이재경=엉터리 예측에 가깝긴 했다. 인천공항 가는 철도도 투자비용이 엄청난데 사용률은 예측과는 차이가 난다. 그런 부분에 대해 책임이 없는 걸 따지는 건 좋은 기사다. 제목이 과한지는 법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표현이냐가 결국 쟁점이 된다.
구현모=‘햄버거병’이란 단어 사용에 대부분 언론사가 성급했다. 햄버거를 먹고 병에 걸렸다는 것과 별개로 햄버거가 어떻게 그 병의 원인이 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햄버거 공포, 진상 규명은 첩첩’ 기사에서 ‘햄버거 포비아’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공포를 조장하는 것일 수 있다. 매주 월요일자에 ‘강소 기업이 미래다’ 시리즈가 있다. 성심당, 여행박사 등을 다루면서 ‘우리 회사 좋아요’ ‘복지가 좋아요’ ‘이런 가치가 있어요’라는 내용을 위주로 소개한다. 강소 기업이 미래라면 그 성장 과정과 배경, 정책까지 보여줘야 한다.
조원희=덧붙여 얘기하면, 소개된 기업들은 다 알려진 곳이다. 사실 복지가 잘되고 있는 회사는 이미 성장 해버린 곳이다. 관심을 갖고 봐야 할 회사는 기술이 있고 작지만 해당 산업에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 기업들이다. 우리가 강조하고 조명해야 할 곳은 조금 다른 기업, 한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기술을 가지고 해외 진출하는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재경=7월 19일자 1면 ‘최저임금 위반 판쳐도 처벌은 고작 1%’와 같은 기사가 좋다. 주목 받지 않는 사각지대의 제도적인 이슈들을 자료를 가지고 추적했다. 보완이 필요하다면 너무 자료에만 의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14일자 11면 ‘서울대 대학원생, 교수 갑질에 반격’ 기사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너무 한쪽 얘기만 가지고 기사를 썼다. 학교 쪽, 교수 쪽 이야기가 반영이 안 되어 있다. 언론의 고질인데 익명과 가명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 5일자 ‘겨를’은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는 얘기를 다뤘다. 역시 등장하는 사람이 거의 다 가명이다.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한 ‘반값 월세 지청장’ 기사도 도무지 누군지 모르게 가려놨다. 익명과 가명의 수준에 대한 고민을 제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수수께끼를 전부 독자한테 던져버리면 문제가 있지 않나.
구현모=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은 기사가 파편적으로 나와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정치부 카톡 방담을 보면서 개괄적으로 이해가 가능했다. 뒷담화 식의 기사가 오히려 사건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고 후문을 스토리텔링해 주는 것도 유익하다.
이계성=최근에 청와대 수석실에서 발견된 문서 논란, 1기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청문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류재성=청와대 기록물 공개의 타당성에 대한 법적 다툼부터 공개된 내용의 파장까지 폭발력이 크다. 계속해서 취재를 열심히 하고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 7월 11일자 칼럼 ‘국방개혁, 송영무가 답이다’는 제목에 놀랐다. 칼럼은 음주운전, 고액 자문료 논란에도 불구 국방개혁을 위해 송 장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청문회는 소용 없고 이러 저런 비리는 그냥 넘어가야 되는 것이며, 대통령이 어떤 과제에 적합한 인물을 지명해 임명하면 된다. 모든 절차를 다 무효화시키는 시각이다.
이계성=자격 문제가 있지만 지금 국방개혁을 추진하려면 그만한 대안이 없다는 논리인데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그런 주장을 했다.
구현모=‘2017 갈등 리포트’ 기사를 매번 읽는다. 시의성은 없더라도 신문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재미있고 뜻 깊었다. 몰랐던 사람들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잘 짚어준다. 그런데 온라인 상에는 제때 업데이트가 안 된다.
이재경= 탄핵사태와 이어진 대선은 국민이 한국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런데 다시 제왕적인 대통령 시스템으로 그냥 가버린 것 같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하자가 많은 사람들이면 못쓰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낙마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청문회 제도 자체가 희화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제도에 관한 반성이나 이런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되는지를 언론이 전혀 짚지 않았다. 성찰할 수 있는 기회들을 못 살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사시 자체가 중도를 표방하다 보니 입장이 애매하다. 어떤 사안의 경우 존재감이 없는 역효과가 나는 듯하다. 정상회담, 강대국 외교문제, 제보조작 사건 등에서도 그렇다. 앞서서 치고 나가거나, 후속 보도를 잘하는 느낌이 아니다. 애매한 스탠스인 것 같은데 잘 읽어보면 또 문재인 정부 노선을 상당히 동의하면서 상황을 따라가고 있다. 그건 중도가 아닐 수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 미션 가운데 하나가 권력 감시다. 지지하는 정부더라도 그 정부의 정책 문제는 다뤄줘야 한다.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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