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주말 예고한 '혁신 선언문' 발표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외부의 시선으로 당을 개혁해 보수우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안정당으로 거듭나겠다며 야심 차게 혁신위를 가동한 홍준표 대표의 구상이 첫발부터 암초를 만난 셈이다. 이런 결과는 류석춘 위원장을 비롯해 '박근혜 탄핵'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우파 인사 일색으로 혁신위가 구성될 때부터 우려됐던 일이다. 고작 '서민경제'라는 문구를 놓고 벌어진 논란이 선언문 발표 연기의 이유라니 참으로 실망스럽다.
논란은 10명의 위원 중 유일한 진보성향 위원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의 가치만 강조하지 말고 당의 경제정책 방향에 서민이 강조되도록 서민중심 경제라는 말을 선언문에 넣자"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보수 위원들이 "대한민국은 서민만의 나라가 아닌 만큼 서민중심이란 말은 부적절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당의 이념ㆍ정체성과도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고 류 위원장 역시 "서민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보수정당의 기본노선으로 잡고 갈 수는 없다"고 거들었다고 한다.
앞서 홍 대표는 24일 혁신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우파ㆍ좌파ㆍ중도적 시각에서 당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혁신"이라며 "양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세상을 보는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주문했다. 그런데도 혁신위원 대다수가 '서민'이란 어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니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하고 혁신위의 존재이유마저 부정한 어처구니없는 행태다. 류 위원장이 엊그제 대학생ㆍ청년 간담회에서 '일베' 활동을 독려해 물의를 빚은 것은 또 뭔가.
이런 식으로 '태극기 휘날린 좋은 시절'에 연연하며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혁신위라면 문닫는 게 낫다. 지금 보수세력이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혁신위의 한가한 소리가 아니라, 무너진 보수를 다시 세울 젊은 리더십과 '유능한 새 피 수혈'이다. 홍 대표가 휴가 중 영국 보수당의 혁신 과정을 '열공'할 것이라고 한다. '홍준표 리더십'에 거는 보수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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