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南 행사 참가에 적극적
2002년 미녀 응원단 인기몰이
김정은 집권 뒤 더 정성 각별
하지만 이번엔 정치 핑계 시큰둥
동계 종목 남북 기량차도 원인
“남 잔치에 들러리 서려 하겠나”
2002년 9월 16일 부산에 인공기가 게양됐다. 몰래 걸린 게 아니었다. 남한 당국 승인 아래였다. 분단 이래 강고했던 금기 하나가 그렇게 깨졌다. 부산아시안게임에 초청됐을 때 북은 쾌재를 불렀다. 적진에 침투해 선전전(戰)을 벌일 기회였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좋은 무장 해제 도구였다. 남은 갈라졌다. 아직 화해가 불안하던 부류는 오각별 깃발이 마뜩잖았다.
진짜 점령군은 선수단이 아니었다. ‘미녀 군단’이라 불린 280여명 규모의 북 여성 응원단이 어쩌면 통일전선전술의 주력이었다. 남남북녀라는 속설이 증명됐다는 환호가 남녘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북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미인계를 쓴다며 정색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북으로 돌아간 미녀들의 일성은 “조국해방전쟁 때도 못했던 부산 점령을 해냈다”였다.
체제 선전과 남남 갈등 유도, 내부 결속까지 가능하게 하는 남측 체육 행사 참가를 북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2003년 8월 대구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와 2005년 9월 인천아시아육상대회에도 선수단ㆍ응원단을 파견했다. 특히 2005년 대회 때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부인 리설주가 응원단으로 오기도 했다. 북이 추구한 건, 공조를 빙자한 경쟁이었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스포츠에 쏟는 북한의 정성이 더 각별해졌다. “체육으로 이름을 알리겠다”는 각오를 후계자 시절부터 공공연히 드러낸 최고 지도자 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체육 강국 건설을 목표로 북 전역에 시설을 확대하는 등 해당 분야 육성에 매진했다. 또 국제 체육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 선수단의 국제대회 출전이 늘었다.
주된 관심은 성적이다. 2015년 8월 동아시아축구연맹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이 중국ㆍ한국 등을 물리치고 우승하자 김 위원장이 직접 평양 국제공항에서 선수단을 마중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ㆍ최룡해ㆍ김양건 등 당시 북 ‘실세 3인방’을 김 위원장이 보낸 것도 대회 종합 7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에게 스포츠는 전쟁의 축소판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매번 선수들한테는 사상전ㆍ투지전ㆍ속도전ㆍ기술전이 강조된다. 극복해야 할 적을 외부에 만들어 권위주의적 통치에 북 인민들이 복속토록 하는 것이 김 위원장 방식이다. 국제대회 성적으로 자본주의 나라들에 맞서 우월성을 과시하려 했던 옛 소련과 동독 등 공산주의 국가들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선 북의 투지가 실종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거듭된 참가 촉구에도 반응이 미지근하다 못해 차갑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공동 입장ㆍ응원 제안을 장웅 북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스포츠 위에 있는 게 정치”라며 일축했다. 실제 스포츠 교류조차 여의치 않을 정도로 남북 관계가 경색 상태라는 건 우리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정치적 분위기 탓만은 아니다. 스포츠라는 화합을 통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게 우리 의도지만 출전권 확보조차 어려울 만큼 동계 스포츠 기량이 떨어지는 북에게는 쇼트트랙 등 최강 수준 종목까지 보유한 남의 선의가 강자의 무신경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남의 잔치에, 초라하게 들러리를 서려 하진 않으리라는 것이다.
흥행이 필요한 남과 IOC가 아쉬울 뿐 되레 북으로선 참가보다 불참의 유인이 더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회 주최측이 와일드카드를 주더라도 남측 행사를 빛내주기 위해 꼽사리 낄 생각이 북에게는 추호도 없을 것”이라며 “마식령 스키장 등을 활용한 공동ㆍ분산 개최 제안쯤은 해야 북 구미를 돋울 수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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