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법원이 블랙리스트에 따른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를 위법행위로 인정했지만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형량이 죄에 미치지 못한다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지지 성명 등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속한 예술인들이 많은 연극계 반발이 특히 컸다. 이날 임인자 연극기획자는 “유죄가 나온 점은 다행이지만 헌법을 유린하고 시스템을 통한 국가폭력의 문제인 블랙리스트가 재판 과정에서는 단순한 지원배제로 축소된 것 같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등 형량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채승훈 연극 연출가는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 억압을 인정했다는 것”이라며 “적어도 7,8년 이상의 중형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예술인들 정서에 어긋나는 결과”라고 말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집행유예는 피고인들이 가지고 있던 권력, 지위와 책임, 그리고 이 사건이 가진 중대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인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문학계와 영화계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피고 형량은 적지만 블랙리스트 자체가 큰 죄라는 걸 사회적으로 인식시켰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뿐만 아니라 그 하수인 노릇을 한 공무원들 역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 달의 김일권 대표는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문화예술계를 탄압하고 실질적 피해를 끼쳤는데 법원이 권력남용 정도로만 판단해 실망스럽다”며 “나쁜 선례가 될 것 같고 진상 조사가 제대로 될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민간 전문가 17명을 포함 위원 21명으로 구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를 본격 출범시킨다고 발표했다. 31일부터 6개월간 진상조사, 제도개선, 백서 발간 등을 진행하며 연장이 필요한 경우 3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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