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가 개봉 첫 날인 26일 역대 최다 스크린에서 개봉일 관객수 신기록을 작성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군함도’는 26일 하루 동안 97만992명을 불러모으며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다. 기존 개봉일 최다 관객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이라’가 기록한 87만2,965명이었다.
이날 ‘군함도’는 2,027개 스크린에서 1만174회 상영됐다. 스크린점유율은 37%, 상영점유율은 무려 55.2%에 달했다. 전국의 극장에서 하루 절반 가량 ‘군함도’만 틀었던 셈이다. 반면 같은 날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배드3’는 상영점유율 15.8%, 박스오피스 3위 ‘덩케르크’는 11.8%로, ‘군함도’에 크게 밑돌았다.
국내 스크린의 92%를 점유한 대기업 멀티플렉스 3사는 ‘군함도’에 스크린을 집중적으로 몰아줬다. 업계 1위 CGV는 전체 스크린 2,114개 중 847개를 배정했고, 2위 ‘롯데시네마’는 1,699개 중 631개, 메가박스는 1,147개 중 438개에서 ‘군함도’를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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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사이에서도 “극장 시간표가 ‘군함도’로 도배됐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20~30분 간격으로 배정된 ‘군함도’ 상영시간표를 두고 “고속버스 배차 시간 같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민병훈 감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독과점을 넘어 이건 광기다. 상생은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사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군함도’뿐 아니라 블록버스터 대작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논란이다. ‘군함도’ 이전에 최다 스크린수(1,991개)를 기록했던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2016)는 1,864개 스크린에서 출발했다. 상영횟수는 9,067회, 상영점유율은 무려 64.4%에 달했다. 최근 700만 관객을 돌파한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경우도 개봉 첫 날 1,703개 스크린에서 9,117회 상영돼 상영점유율이 57.8%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촬영해 기대감이 높았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은 개봉일 스크린 수 1,731개, 상영횟수 8,844회, 상영점유율은 65.4%였다. ‘군함도’와 비교해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는 다소 적지만, 상영점유율은 오히려 높았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모은 ‘부산행’ 역시 개봉일 1,571개 스크린에서 8,831회 상영돼 하루 동안 87만2,673명을 동원했다.
이 때문에 영화계는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대기업의 영화 배급ㆍ상영 분리와 동일 영화의 상영 비율 제한, 독립영화 의무 상영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군함도’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자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경쟁작 상황과 높은 예매율, 관객 선호도 등을 고려해 극장이 자체적으로 스크린을 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함도’는 개봉 전날(오후 5시 기준) 예매 관객수만 41만8,244명이었고, 개봉일 오후 1시에는 예매율이 70.1%까지 치솟았다. 개봉 이틀째인 27일에도 오후 2시 기준 예매율 62.5%, 예매관객수 40만2,265명으로 수치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관객들이 그만큼 많이 찾고 있기에 스크린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여름 극장가가 블록버스터간의 경쟁 체제로 재편되면서 일찌감치 다른 영화들이 여름 개봉을 피한 데다, 대항마로 꼽혔던 ‘덩케르크’의 흥행세가 주춤했던 것도 ‘군함도’에 스크린에 쏠리게 된 이유로 거론된다.
하지만 스크린 독과점이 영화의 장기흥행 면에서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개봉 초기에 관객이 몰리면 입소문 전파 시간이 짧아져 화제성이 금방 소진된다”며 “그만큼 전체 상영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 분석가는 “스크린 독과점보다 교차 상영으로 인해 다른 영화들에 끼치는 피해가 더 큰 문제”라며 “화제작 외에도 스크린을 배정 받은 다른 영화들의 상영횟수를 보장하는 방안부터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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