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정책 추진
저성장 양극화 해결엔 공감
새 정부 증세 의지 너무 약하고
부자 증세로 세수 효과 크지 않아
경제부처가 예산 배분서 우위
복지예산 적절한 배분 안 이루어져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작은 정부’였다. 그 결과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여전히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정우(67) 경북대 명예교수는 26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론’에 대해 “지금 상황에선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힘을 실어줬다.
지난 10년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규제완화에 집착하면서 시장엔 거의 개입하지 않아 경제ㆍ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은 저성장과 양극화를 재정의 힘으로 풀어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 지금은 통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 성장론의 핵심 개념인 소득주도성장(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올려 소비활성화와 경제성장을 꾀하는 것)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주문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자체는 옳다”면서도 “어떤 수단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이끌어 내느냐가 관건”이라 강조했다. 그는 ▦임금을 올리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대ㆍ중소기업의 ‘갑을 관계’ 해소를 통해 풀거나 소득주도 성장의 구체적 실행 방법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의 조합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했다.
이 명예교수는 또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못 박았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초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 ▦초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방안을 고려하고 있음에도, 그는 “새 정부가 증세에 대한 의지가 너무 없다”며 “부자증세와 보편적 증세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자증세만 하는 것은 외견상 ‘징벌적’으로 보이고, 세수효과도 크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초고소득자, 고소득자 외에 중산층 이상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세원을 발굴해서 보편적 증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명예교수는 보편증세의 원칙은 법인세 인상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인세 증세 대상을 꼭 대기업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경우에 따라 중견기업 등의 법인세율을 올리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문재인 정부가 5년간 100대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178조원)의 절반 가량을 지출 구조개혁을 통해 마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예산은 그 자체로 관성을 지니고 있어 좀처럼 바꾸기 어렵다”며 “지출 구조조정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도 9년간 늘 하던 이야기였고 경험적으로 틀린 것으로 판명 났다”고 그는 꼬집었다.
이 명예교수는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예산 편성의 주도권을 청와대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산권을 경제부처(기재부)에 맡겨 두면 항상 예산 배분에서 경제부처가 우위를 차지하고 사회부처는 열등한 지위에 놓인다”며 “그렇다 보니 복지예산이 제대로 적절하게 배분되지 못하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만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청와대가 예산 편성의 통제권을 잡고 전체를 살피며 바른 방향으로 설계해 가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이 소집한 재정전략회의는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이정우 명예교수는
1950년 대구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를 역임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지금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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