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에 청어 구이와 청어 우동, 청어 절임을 먹었다. 청어철도 아닌데 청어 잔치가 났다. 철로 따지자면야 민어로 복달임이라도 했으면 싶었지만, 제철 맞은 민어의 몸값이 보통 오른 게 아니어서, 대신 청어로 여름 입맛을 달랜 셈이다. 달달하게 훈제한 청어를 넣은 우동은 특히 맛있었다. 사시사철 흔하디 흔한, 게다가 저렴하기까지 한 청어를 먹은 게 뭐 자랑이라고.
청어가 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생선이 아니다. 우선 비리다. 등 푸른 생선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비린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웬만한 이들이 굳이 찾아 먹지는 않는 생선이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잔가시. 발라도 발라도 따라 나오는 참 난감한 잔가시들. 그 정도의 잔가시는 그냥 씹어 먹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맘 편히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컥컥 목구멍에 박히기도 하는 잔가시. 그래서인지 잘 발라먹고 남은 가지런한 청어가시를 보면 좀 으쓱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쩐지 청어를 정복한 듯한 느낌이랄까.
돈키호테도 청어 타령을 한 적이 있다. 감히 양 떼와 대적하다가 목동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양 떼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난 다음, 이가 깨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들판에 대자로 뻗어 누웠을 때. “무엇보다도 말일세, 지금 나는, 거칠지만 큰 빵 하나와 염장 청어(Sardinas Arenque) 대가리 두 개만 있다면 정말 좋겠네”라고. 대좌절의 순간 떠오른 음식, 염장 청어. 잘 바른 살도 아니고 소박하게 대가리 두 개라니.
사르디나스 아렌케(Sardinas Arenque). 청어를 소금에 절인 다음 훈제 건조해서 만든다. 한때 염장 대구와 함께 화폐로도 사용될 만큼 중요하고도 귀한 음식이었다. 잘 말린 염장청어는 황금빛이 돈다. 대가리를 떼어 내고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면, 꾸덕꾸덕하게 잘 마른 붉은 살이 드러난다. 그 살을 올리브유에 담갔다 먹기도 하고 구운 야채와 함께 빵에 올려 먹기도 한다. 짭짤하고 고소하고 기분 좋게 비리다. 먹는 방식이나 맛이나 딱 우리의 과메기를 닮았다. 과메기도 원래 꽁치가 아니라 청어다. 그러니까 돈키호테는 절망의 순간 말하자면 과메기가 먹고 싶었단 말이지. 살도 없는 그 뻣뻣한 과메기 대가리를 쪽쪽 빨고 싶었단 말이지. 불쌍한 돈키호테. 구룡포 과메기 짝짝 찢어 마늘, 파 넣고 미역에 싸서 초고추장 푹 찍어 한 입 먹여주면 좋으련만.
청어는 말려 먹어도 좋지만, 식초에 절여 먹어도 맛있다. 스페인 타파스집에서는 올리브나 양파 등과 함께 돌돌 말아 꼬챙이에 꿴 청어 식초 절임을 흔히 볼 수 있다. 푸른 껍질색이 그대로 살아 있어 입맛을 당긴다. 토마토를 갈아 얹으면 짠맛과 단맛 비린내와 향긋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새곰하고 달달하고 비리고. 한여름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리는 안줏거리이다. 그런데 그걸 안주가 아니라 해장으로 먹는 곳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독일의 롤몹스가 그것. 청어 식초 절임은 아무래도 해장에 좋은 안주인가 보다. 술을 부르기도 하고, 술과 함께여도 좋고, 술을 다스리기도 하는 청어.
청어는 역시나 굵은 소금 뿌려 숯불에 구워먹는 게 최고다. 기름 잘잘 흐르는 등 푸른 생선 굽는 냄새는 집 나간 누구도 돌아오게 만드는 냄새가 아니겠는가. 이왕이면 한여름 뙤약볕 백사장에서 굽는 생선 냄새를 맡아 볼 일이다. 제철이 아니어도 괜찮다. 짠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 들어온 구운 생선 냄새. 체면 차릴 것 없다. 양손으로 머리와 꼬리를 잡고 옥수수 발라먹듯 후루룩 쩝쩝. 땀을 뚝뚝 흘리면서, 온 손가락에 비린 청어기름을 묻혀 가며, 가끔은 잔가시 하나쯤 볼따구니에 붙여 가며, 그렇게 한 청어 두 청어 정복하다 보면, 이 뜨거운 여름도 견딜 만하다 생각이 드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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