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어, 아반떼 스포츠 등 성능 높인 차량 수요 증가세
차별성 둔 고성능차 라인업 속속들이 등장
제로백 공개 등 완성차 업체 성능 중시까지
‘고성능차’, 차별화, 기술 자신감 근원
일상 주행에 초점을 맞춰 차량을 내놓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보다 빠르고 힘 좋은 고성능 차량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포화상태에 이른 자동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국내 기술도 수입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보이기 위해서다.
2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기아자동차가 5월 말 출시한 스팅어는 최근 판매가 2,000대 넘어섰다. 올해 목표량(8,000대)의 25%를 두 달 만에 채운 것이다. 현재 밀려드는 주문으로, 계약 후 차량 인도까지 2, 3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1만대 판매도 가능하다. 스팅어가 그간 국내에선 시장 규모가 작았던 스포츠 세단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판매 행보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계약자 10명 중 4명이 스팅어 중 가격이 가장 높은 트림인 3.3트윈 터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과거에는 해당 모델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중시하다 보니, 가장 저가의 트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스팅어는 성능을 만끽하고 싶은 소비층이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고성능차량의 인기는 스팅어만이 아니다. 고성능 부류에 포함시키기는 다소 부족하지만 기존 모델보다 성능을 중시한 아반떼 스포츠나, 쏘나타 터보, K5 터보를 찾는 소비층도 늘고 있다. 이들 차량의 특징은 기존 모델에 터보엔진을 얹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아반떼 스포츠는 아반떼와 같은 프레임에 1,600㏄지만, 성능은 비교가 안 된다. 204마력에, 27.0토크나 돼 상위 모델인 쏘나타 2.0(163마력ㆍ20.0토크)을 넘어선다. 쏘나타 터보 역시 245마력에, 36토크로 서민의 포르쉐로 불리는 골프GTI(211마력ㆍ37.7토크)보다 고출력을 자랑한다. 현대차는 이들 차량 외에도 고성능 브랜드인 ‘N’을 단 첫 모델인 ‘i30N’을 9월 유럽에서 출시하며 고성능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향후 N브랜드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중대형 세단 등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한국지엠이 지난해 9월 들여온 미국 정통 스포츠카 카마로SS도 탄탄한 소비층을 갖췄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해 국내에 잘 알려진 차량으로, 최대출력 455마력에, 62.9토크를 발휘하는 V8 6.2L 엔진을 얹혀 고속주행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출시 4개월 만에 653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올해도 매달 40여대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르노삼성은 아직 고성능 모델은 없으나, 르노그룹의 고성능차량인 클리오RS나 메간RS 등의 수입ㆍ판매를 검토하고 있다. 박동훈 사장이 “고성능 모델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의지가 높다.
완성차 업계가 고성능 차 라인업 강화에 주력하는 이유는 수요가 정체된 내수 시장에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총 2,218만8,565대로, 지난해말 대비 1.8% 증가에 그쳤다. 2014년 등록 2,000만대를 돌파한 이후 증가세 둔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업계에선 20세 이상 성인 1.93명당 자동차 1대씩을 보유해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성능 차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어서 결국 브랜드 이미지까지 높여 다른 차량 판매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고성능 차량 제작을 판매에 이용하고 있다. 차량 성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공개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출시한 코나는 소형 SUV인데도 ‘제로백 7.6초’를 드러내며 주행성능에 강점이 있는 차량이라고 강조하거나, 기아차 스팅어 역시 국내 차량으로는 가장 빠른 4.9초를 광고 문구로 사용했다. 쌍용차는 G4렉스턴을 내놓으면서 “2톤에 이르는 대형SUV는 출발할 때 가속이 중요하다”며 제로백이 아닌 ‘제로이십 1.4초’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일상 주행위주로 가성비 높은 차량 제작에 주력하다 보니, 최근까지 주행성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제로백 공개를 기피해왔다”며 “성능을 돋보기게 하기 위해 제로백까지 경쟁하는 시대가 된 만큼, 해외 브랜드와 본격적인 경쟁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