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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꼭 배고파야 하나요?”…어느 음악 기획사의 작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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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꼭 배고파야 하나요?”…어느 음악 기획사의 작은 실험

입력
2017.07.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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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레이블 '벙커버스터'의 윤종수(맨 왼쪽에서 두 번쨰) 매니저와 밴드 '어나더데이'의 리더 김형섭(첫 번째)씨, M020의 멤버 최현민(세 번째)씨가 24일 서울 대치동의 한 녹음실에서 자신들의 음악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디레이블 '벙커버스터'의 윤종수(맨 왼쪽에서 두 번쨰) 매니저와 밴드 '어나더데이'의 리더 김형섭(첫 번째)씨, M020의 멤버 최현민(세 번째)씨가 24일 서울 대치동의 한 녹음실에서 자신들의 음악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음악만 하면서 사는 게 꿈이에요.”

지난 24일 서울 대치동의 한 녹음실에서 만난 인디밴드 ‘어나더데이’의 리더 김형섭(32)씨는 꿈을 말하면서도 어깨를 움츠렸다. 멤버 5명 전원이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느라 연습 시간을 내기도 빠듯한 현실. 그에 비하면 돈 걱정 없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생활을 바라는 건 순진한 꿈 같았기 때문이다.

김씨가 소속된 신생 기획사(인디레이블) ‘벙커버스터’는 그 ‘바보 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모험을 진행 중이다. 소속 뮤지션 9명에게 기본소득의 명목으로 6개월간 월 30만원을 지급해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작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는 6개월 동안 뮤지션들이 더 좋은 작품으로 음악을 알리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다.

이처럼 국내 음악계에서 드문 실험을 계획한 건 윤종수(44) 매니저다. 그는 기존 기획사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참신한 뮤지션들의 음반 발매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3월 벙커버스터를 세웠다. 하지만 문제에 부딪혔다. 소속 뮤지션들이 생계 해결과 악기 구입을 위해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정작 음악에 전념할 할 시간이 부족, 작품활동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노래연습 장소를 구하기 위해 몇 달 간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보컬, 밤새 다른 사람의 음악 편곡을 돕느라 정작 자기 음악을 만들기 빠듯한 작곡가. 이들을 보며 윤 매니저는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밴드 ‘어나더데이’의 곡 ‘T.F’. 뮤직비디오는 핸드폰으로 찍은 뒤 직접 편집했다]

물론 이들이 소위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과 같은 예술인 지원 제도의 문을 두드려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청년 예술인들에게 이는 ‘그림의 떡’과 같았다. 지원을 받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인복지재단에 정식 등록하려 해도 본인 이름으로 최근 3년 안에 발매한 곡이나 음반활동 이력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속 뮤지션인 M020의 최현민(27)씨는 “음반 한 장을 내는데 최소 1,000만원이 들고 뮤직비디오 제작조차 수백만원이라 직접 찍는 상황”이라며 현실을 모르는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예술활동을 통해 연간 120만원 또는 최근 3년간 36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린 사실을 증명하라는 기준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윤 매니저는 “뮤지션들은 월급이 아닌 음반과 공연수익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작품활동에 매진하지 못하면 수입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신인 뮤지션들은 돈이 없어 ‘멘땅에 헤딩’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수입을 증명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M020가 발표한 첫 곡 ‘ill’]

벙커버스터는 이번 실험을 통해 ‘예술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다. 김씨는 “우리를 공연에 섭외하는 사람들 조차 ‘예술가가 돈을 밝히면 안 된다’면서 약속했던 공연비의 절반만 주곤 한다”며 “열정을 핑계로 우리 예술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 역시 “예술을 하면 가난해지는 건 인디뮤지션에게 음원수익을 거의 지급하지 않는 기형적 구조 탓인데도 사람들은 이를 당연시 여긴다”며 “예술가도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벙커버스터의 실험이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기본소득 중 두 달치는 크라우드펀딩 모금액으로 지원되고, 나머지 4개월간은 기획사의 재정에서 지급된다. 모금이 성공할 지도 확신할 수 없는데다 6개월간 소속 뮤지션들의 음악이 유명해지리란 보장도 없다. 하지만 윤 매니저는 자신이 다른 일을 해서라도 소속 뮤지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돌’ 일색인 음악시장에서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한국대중음악이 발전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뮤지션들의 음악은 작은 날갯짓이지만, 그 창의성이 큰 폭풍이 되어 한국음악시장 전반에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되길 바랍니다.” 윤 매니저의 목소리에선 강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글ㆍ사진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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